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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변장호 중국 영화계가 "거물" 존경|임영<영화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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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0면

중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세계적 화제가 되기는 장예모 감독의『홍고량』『국두』가 최초였다. 이 두 영화는 대종필름을 경영하는 변장호 감독(1939년 생)이 수입, 개봉했다.
당초『붉은 수수밭』(홍고량)은 변장호 제작·감독의『감자』(87년)와 물물교환하자는 제의가 중국으로부터 스위스 상인을 통해 있었다. 이때는 아직 중국과의 관계가 요새처럼 쉽지 않았다. 변장호는 즉시 안기부에 협조 의뢰한다. 때마침 당정협의회에서 공산권 영화 규제가 풀린다.
거래가 구체화되지 않고 엉거주춤한 상태에서『붉은 수수밭』이 베를린 영화제 대상을 탄다. 그 영화의 주가가 올라갈 수밖에….
『감자』와 물물교환 하자던『붉은 수수밭』은 10만 달러 내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5만 달러를 내라는 등 말이 오가는 사이에 여러 사람이 덤벼들어 값이 29만 달러까지 치솟아 미국 대학교수라는 어떤 재미교포가 그 가격에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 무렵 재미교포들의 공산권출입은 자유로웠다.
이때쯤엔 국내 극장업자·지방업자들이『붉은 수수밭』을 비디오로 보고 나서 모두 재미없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극장에 걸려고 해도 아무도 안 받아 주니 가지고 온 사람은 몸살이 날수밖에 없었다. 결국 당초에 거래를 텄던 변장호에게 가져왔다.
변장호는 거래도중 15만 달러까지는 내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15만 달러에 샀다.
극장들에 교섭한 결과 피카다리에서 4주가 비니 그 동안이라도 걸 테면 걸라고 했다. 게다가 그 앞 프로가 관객이 안 들어 미리 잘라 1주를 더 보태 5주 동안 잠실에 있는 롯데 월드 극장과 함께 걸어 22만 명이 들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라』는 성경 구절도 있지만 변장호로서는 훌륭한 흥행이었다.
물물교환 하자던『감자』는 김동인 원작으로 시골 유부녀(강수연)가 상습적 매춘행위를 하다 결국엔 중국인 왕 서방(이대근)에게 죽는 얘기로 되어 있다.『감자』에 중국인이 등장하기 때문에 물물교환하자고 제의했던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일본신문에 보도된『감자』기사를 보고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
『감자』는 87년 대종상에서 임권택 감독의『연산일기』와 경합해 대상 최고점을 받았다가 발표 전날 밤 집행 위원회 측에서 심사위원에게 점수를 고쳐 쓰라는 등 옥신각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때는 이상하게 일본기자 3명이 초청되어 왔다는 것인데 그들이 돌아가서『감자』가 좋다는 등 기사를 썼던 모양이다.
심사위원에게 점수를 고쳐 쓰라는 얘기는 한때. 영화계 단골(?)심사위원 비슷하게 활약하던 모 여자 대학 R교수가 울먹이면서 변장호에게 전화했었다.
대종상은 예나 지금이나 말썽 투성이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튼『붉은 수수밭』이후 변장호의 대 중국 관계 위치는 현저히 향상되어 정식 교역 2년 전 쯤 공식 초청되어 갔을 때는 북경의 감독 1백명 이상을 비롯한 많은 영화인·문화예술인 앞에서 연설도 하는 꽉 짜인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이었다. 조금 쑥스러울 정도의 V IP대우였다.
그후의『국두』도 역시 15만 달러 냈었다. 일본과 동시 개봉했는데 10만 명 밖에 안 들었다.『국두』는 이번에 시카고 영화제 대상도 받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도 지명되었던 것으로 보아 개봉이 좀 일렀던 것 같다.
장예모 감독은 세 번 만났다. 영화에 미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제3작『홍등가』는 대만에서 돈을 대 제작한 것인데 북경에서 1백km거리에 있는 장흥에서 찍을 때는 현장까지 가 봤다. 지난 3월에는 일본 동경에서 그 영화의 후반 작업중인 그를 만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이름은『홍등가』지만 술·여자가 있는 거리의 뜻은 아니고 남자 한 명이 여자 세명을 거느리는 얘기로 되어 있다. 변장호는 이 영화를 계약하지 않았고, 또 국내업자가 35만달러에 수입 계약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이상한 계기로 장예모 영화와 인연이 생겨 중국 영화 통처럼 되었다. 그러나 다른 외화도 많이 수입한다. 외화를 수입하며 터득한 진려(?)는 영화는 금과 같은 것으로 백만 달러 짜 리는 백만 달러 가치가 있고 10만 달러 짜 리는 10만 달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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