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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고 교육 시스템 확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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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종용 삼성 부회장과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1일 체결한 '기능장려 협약'은 실업계 고교생에게 희망을 주는 있는 일로 크게 환영할 만하다. 이 협약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일류기업 대표와 노동부 장관과의 협약 체결보다 그동안 우수한 기능 인력 배출의 산실이었던 전국 기능경기대회나 국제 기능올림픽대회 출신들을 국가 경제발전의 성장 동력으로 흡수하겠다는 기업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볼 때 기부금 기탁이나 일부 학생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실업고 학생에겐 큰 희망을 주는 일이다. 그러나 '기능장려 협약'만으론 오래전부터 중증 환자가 돼 버린 실업교육을 치유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실업교육은 마치 수요자가 외면하는 제품만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그래서 유용성 측면에서 볼 때 실업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는 '산업인력 양성' 이란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고, 시대 변화에 따른 개혁이 요구될 때마다 임기응변적으로 안일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윤 부회장은 협약식에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교육과 인재 육성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교육과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노동부 장관과 만났던 실업고 교장단은 '보여주기식의 현상 변화'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실업교육의 시스템 개혁을 요청했다. 특히 무분별한 대학 설립으로 인한 대학 정원 채우기가 결국은 실업 교육의 본질을 망치게 했다는 어느 교장 선생님의 고언(苦言)은 교육 당국자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기업 경쟁력으로 국가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현실에서 삼성이 '기능 인력 육성'에 관심을 보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능 선진국이 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실패한 실업교육 정책의 한 단면이다. 기능 활성화의 문제는 무엇보다 실업교육의 본질에 있다. 따라서 지금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키워드는 실업교육이 '산업 인력 양성' 이라는 본질 회복, 기술자.기능인을 제대로 대우하는 정책, 우수한 기능 인력을 숙련된 전문가로 육성하는 것 등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나아가 삼성도 단지 우수 기능 인력을 채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숙련된 전문가로 육성하는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세계 일류제품과의 경쟁에서 절대 우위에 서기 위해선 우수한 기술과 기능 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만연된 기술.기능 경시 풍조와 이공계 기피 현실 속에서 기술자.기능인의 명예.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따라서 정부도 이제는 더 이상 통상적이고 말뿐인 우대정책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우정책을 펼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실업교육과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키워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계하는 정책 비전을 정부가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기능장려 협약'은 기능 활성화에 꼭 필요한 일로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번 삼성의 '기능장려 협약'을 계기로 다른 대기업들도 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적극 참여해 21세기 코리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이와 함께 실업 교육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것이 더 큰 기능 활성화의 길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