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냉소주의의 자기함정/유승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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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일국민들이 2차세계대전의 악몽에서 깨어난 후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진 의문은 「어떻게 괴테와 베토벤과 칸트를 낳은 우리들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일사불란하게 나치즘이란 광기에 휘말릴 수 있었던가」하는 점이었다. 이 불가사의한 의문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끝에 그들이 얻은 결론은 그것이 다름아니라 나치즘 등장직전에 독일사회에 팽배했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그리고 국민의 무력감과 책임회피 자세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독은 전후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민의 정치에 대한 적정한 관심과 참여의식을 고취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수호의지를 확립하기 위한 정치교육을 중요 목표의 하나로 삼았다. 서독이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눈부신 성공을 거둬 마침내 통일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를 통해 국민들이 올바르고 성숙한 정치의식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지난 3월의 기초의회 의원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얼마나 짙은 불신과 환멸감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에서는 50%를 갓 넘은 투표율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라며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가능한한 부정하려 하고 있지만 선거전후에 있었던 여론조사 결과들은 분명히 지난 선거가 많은 국민들의 무관심과 불신속에 치러졌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정치불신에서 오는 이러한 국민의 무관심과 냉소주의에 대해서는 당연히 정치권이 그 1차적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 피해가 정치권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국민 스스로가 바로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피해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정치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이나 냉소주의는 정치권에 대한 경종이기 이전에 우리들 자신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투표율이 50%를 간신히 넘고 기존정당 전체에 대한 지지율이 고작 50%에 머물고 있는 것을 정치권에 대한 우리들이 따끔한 일격으로 여기고 흡족해하며 그저 경제적 만족이나 추구하고 있을때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들은 오히려 내심 쾌재를 부르게 된다.
50%라는 정치공백이 빚어졌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냉소주의에만 빠져 있을때는 현실적으로 그것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자신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누구도 민주주의 그 자체만은 거부할 수 없는 사회에 있어서도 민주주의는 역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지키고 쟁취해야할 성질의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전반적인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속에서도 한구석에서는 적극적으로 국민주권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려는 각성이 싹트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기초의회선거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인 시민운동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시민운동은 이제 그 첫 발을 내디딘데 불과하다고 하겠지만 이미 지난 선거에서도 상징적 차원에서나마 그 구체적인 열매를 거둔 바 있다.
「주민자치와 참여를 위한 시민연대회의」가 지원한 7명의 후보가운데 6명이 당선됐으며 노총이 뒷받침한 후보도 20명이 진출했고 기타 여러 지역에서도 적지 않은 사회운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대한 대표가 선출된 것이 그것이다. 이는 민주정치의 정착을 위한 괄목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모처럼 실시된 지방자치제가 문자 그대로 풀뿌리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광역의회선거에선 시민세력의 진출이 더욱 본격화되어야 한다. 여·야의 기성정치 세력들로서는 이러한 현상이 우선은 부담스럽게 여겨질지 모르나 길게 보면 이를 통해 오히려 자신들의 입지도 강화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될 수 있다.
야당쪽에서는 비판세력의 분열에 대한 우려가 클는지 모르나 건강하고 전문적 능력이 있는 비판세력이 지방행정에 자리잡는다는 것은 길게 보면 야권의 강화에 기여하면 했지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당의 입장에서 볼때도 정쟁의 차원이 아닌 건전한 비판자와 충고자를 갖는다는 자기발전을 위해서도 오히려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소외되어온 시민들의 극단적인 저항을 방지하는 합리적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기성정치권은 관계법과 제도를 그에 맞게 개정하는데 인색치 말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보다도 과연 누가 새로운 정치질서를 원하는 시민의 욕구를 대변해 나설 것이냐 하는 점이다. 시민정치의 개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막상 스스로가 그 역할을 떠맡는데는 모두들 소극적 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또다른 의미의 정치적 무관심이며 책임회피다.
시민의 욕구를 올바로 대변할 수 있는 전문적 식견과 때묻지 않은 경력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현재 영역에서도 충분히 자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하면 오늘날의 정치불신과 혼란은 그렇게 자신의 성안에서만 안주했던데 그 원인이 없지 않다. 진정으로 새로운 정치의 전개를 원한다면 자신들부터 그 성에서 나와 낮은데로 임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시민이 부과하는 도덕적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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