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츠는 전통적인 미술 형식이나 도상의 사용을 거부하고 미술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작품'이나 '작가'라는 개념 자체를 무시하고 헌 신문지나 폐품 등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사소하고 평범한 물질을 재료로 삼은 그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참여미술의 성격이 강한 작업을 선보였다.
그가 이런 볼품 없는 일상의 흔적을 귀하게 생각한 것은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 세련되고 매끈한 물질을 소재로 사용하며 세상과 따로 가는 70년대의 개념미술이나 '최소한의 미술(미니멀 아트)'에 대한 반동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은 나무 다발과 흙, 빈 병과 돌 등으로 구성한 81년 작 '시간에 기초한 건축'은 메르츠가 이상으로 삼았던 현실 참여적인 미술을 엿보게 한다.
메르츠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현실을 재료와 구성 속에 반영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80년 '아르테 포베라'의 주요 회원들이 연 전시회 '논쟁과 통합'에선 다른 미술가들과 함께 "이 전시는 이탈리아, 나아가 유럽의 지배적인 정치적.문화적 상황에 대한 미술가들의 반동이요 비판이며 응답"이라고 주장했었다.
메르츠는 80년대 이후 선사시대의 동물들 이미지나 소용돌이 치는 나선형의 이미지들을 쓴 평면작과 거대한 설치작들을 선보이며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고,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올해 일본 미술협회가 제정한 '프레미움 임페리알레'상을 받기도 했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