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향의 고향만들기(권영빈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휘자 임헌정씨는 메니스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작곡·지휘공부를 끝낸 다음 서울대음대교수가 되고 3년뒤인 88년 부천시로부터 교향악단 창단교섭을 받게 된다.
그는 시장에게 지속적인 예산·행정지원의 보장과 불필요한 간섭배제를 조건으로 제시했고 그의 제의는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그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단원을 선발했고 선발된 연주자들은 좋은 교향악단을 만들자는데 뜻을 함께 했다.
이듬해인 89년 10월1일,시민의 날을 맞아 부천시립교향악단은 감격적인 첫 연주회를 하게된다. 2천여 시민이 자리를 메운 시민회관지휘대에 오른 지휘자는 첫곡으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교향곡을 연주하는 까닭을 설명했다. 고국 체코를 떠나 미국생활을 하면서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을」작곡한 드보르자크의 망향곡을 들으면서 부천이 여러분의 고향임을,부천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긍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위로 자전거를 탄 소년이 달려나오면서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부천 복사골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청중과 악단은 한판 신나는 시민축제를 엮어나갔다.
창단 3년만에 부천필은 가장 패기있고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교향악단이라는 음악계의 평가를 받으면서 부천시민들이 소중하게 아끼는 예술단체·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부천사람들은 흔히 『부천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보다 『부천에 잠시 있다』고 말한다.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또는 서울에서 밀려나 잠시 부천에 머물러 있을 따름이다. 서울로 가는 간이역이고 서울에서 살기위한 잠시동안의 숙박소인 것이다.
인구 67만명,경기도 최대의 도시로 떠오른 부천시는 토박이 8%,30대인구 85%,이동률 64.5%라는 진기록을 수립하는 부랑의 젊은 도시다.
기대 볼 언덕이 없고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눌 이웃이 없다. 모두가 떠도는 각박한 일상속에서 자고 일 나가고 이삿짐을 쌀 뿐이다. 1년에 25만명이 이삿짐을 싸 떠나고 28만명이 새로 이삿짐을 풀어 놓는 곳이 부천이다.
부천은 산업화과정속에서 무섭게 불어난 서울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닮았고 지난 10년동안 우리 모두가 살아온 삶의 축도를 지금 부천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 10년동안 우리 사회의 변동지표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9백만명씩 모두 9천만명이 이사를 다녔고 겨우 인구의 9.7%만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평균 3년,모두가 떠도는 부동사회였다.
이웃이랄게,공동체의식이란게 형성되고 존재할 겨를이 없었다. 부동의 사회란 익명의 사회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남의 이름을 알 필요가 없다.
익명의 사회는 믿음과 질서를 무시한다. 그래서 부동의 사회,익명의 사회는 무규범과 무질서가 판치는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떠도는 도시에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익명의 사회를 공동체 사회로 바꾸는 길은 무엇인가. 삶의 외형적 총량보다는 삶의 질,문화의 사이즈를 중시하는 풍토로 의식전환을 유도해야 하고 그 유도의 방식이 문화적 접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삶의 터전이고 뿌리임을 문화적 유대를 통해 일상적으로 확인하는 길이다. 그래서 문화적 시설과 공간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떠도는 도시 부천에 고향악단을 창단하고 「호적 옮겨오기운동」을 전개하면서 복사꽃 예술제를 해마다 열고 있는 부천시의 착상과 실천은 바로 이런 이유로해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일견 대수롭지 않고 구색으로 끝날일을 의지와 집념으로 실천에 옮긴 정태수·허태열 전임 시장들의 노력 또한 권위주의와 편의주의 행정관료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새삼 이런 관리도 있다는 신선함을 일깨워 준다.
정명훈이 한때 상임지휘자로 있었던 독일 자르 브리켄 교향악단은 인구 20만명 남짓의 작은 도시에 속해있다. 정기연주회는 일요일 오전을 택한다.
마을 사람들은 가족끼리,이웃끼리 일요일 봄 아침의 맑은 공기,맑은 햇살을 맞으며 연주회에 참석한다. 연주회가 끝나면 가족끼리,또는 이웃과 함께 점심을 든다.
이런 마을,이런 도시에서 이웃간의 불신이 높아지고 음해와 부정,비리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상이 벌어지리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교향악단이라도 좋고 국악단 사물놀이패라도 상관없다. 사람과 사람,이웃과 이웃을 믿음과 정으로 교감시켜주는 매체라면 무엇이든 될 것이다. 바로 그 매체가 예술이고 그 매체의 공유가 곧 문화습관인 것이다.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끝났고 15일이면 2백60개 시·군·구 지역의회가 개원할 것이며 4천3백여 의원들이 지역활동을 위해 뭔가를 시작할 때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 떠도는 도시를 안정된 도시로,익명의 사회를 공동체 사회로 만들어 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적 접근이 가장 효과적임을 기초의회 의원들에게 제언하고 싶다.
모든 마을,모든 도시가 버리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그리는 고향이 되게끔 지금부터 함께 노력해 보자는 것이다.
지자제의 실시가 곧 「고향 만들기」의 첫 삽을 드는 작업임을 환기시키고자 한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