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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회장 "내년 47조 투자 … 일자리도 늘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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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재벌 회장들과 따로 만나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이런 원칙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청와대 참모들은 말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가 열린 28일 4대 그룹 회장과 전경련.대한상의 회장 등 재계의 대표인사 6명을 별도로 초청해 청와대에서 만난 건 그래서 이례적이다.

30분이란 시간은 충분한 대화를 나누기에 짧았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후 노 대통령이 4대 그룹 회장을 다른 그룹 회장들과 분리해 청와대에서 별도로 만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참모들이 "한번 만나시라"고 건의했고, 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모양새가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특히 이날 만남은 노 대통령이 전날(27일) 부산에서 우리 사회의 특권 구조를 언급하며 "정부에서는 검찰이 센 편이고, 정부 밖에서는 아무래도 제일 센 것이 재계고, 그 다음이 언론이지 않으냐"고 말한 뒤끝이어서 더 관심을 끌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이건희 삼성.정몽구 현대차.구본무 LG.최태원 SK 회장(앞줄 오른쪽부터)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에서 영상물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 4대 그룹 회장, "투자 늘리겠다"=노 대통령과 4대 그룹 회장의 만남은 대통령이 묻고, 회장들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현대제철을 찾아주신 데 대해 고맙다"는 인사도 했으며, 노 대통령은 구본무 LG 회장에게 "파주(LCD공장)는 어떠냐"고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이건희 삼성 회장-정 회장-구 회장-최태원 SK 회장의 순으로 발언이 이어졌다.

▶노 대통령="수출 3000억 달러 달성, 경제 5% 성장 등 올해 경제를 이끌어준 기업들에 감사드린다. 내년에도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역할해 달라.

경제 전망이 불투명할 때일수록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미래성장 동력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를 늘려 달라. 부품산업의 기술은 대기업의 지원으로 선진 수준을 많이 따라가고 있는데 소재 산업은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렵고 기술 격차도 크기 때문에 대기업이 특히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대체 에너지, 핵 융합 발전 기술 개발 등으로 고유가에 대처하고 있으나 자원개발 전문 인력 양성같이 에너지 문제를 장기적인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내년 7월에 결정되는 평창 겨울올림픽과 12월에 결정되는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대기업들이 지원 좀 해 주시라."

▶이 회장="올해 기업 상황이 고유가와 환율로 좀 힘들었으나 현재보다 앞으로 5년, 10년 후 무엇을 먹고 사느냐는 문제를 고심하고 있다. IOC 위원으로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노력하겠다."

▶정 회장="현대제철 등의 투자를 최대한 확대해 일자리를 늘려 나가겠다. 글로벌 경쟁에서 상생협력은 필수적이며, 현대차는 현금 결제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 회장="올해 준공된 LG필립스 파주 공장이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로 일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면 관련 회사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력사와 공동으로 거둔 성과는 협력사에 돌려주고 있다."

▶최 회장="SK가 대통령의 자원 정상 외교로 원유와 가스 개발에 크게 도움을 받았는데 자원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물론이고, 중국.일본과의 (FTA) 협상도 추진해 주셨으면 한다. 글로벌 경영을 위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노력을 적극 지원해 주시기 바란다."

윤대희 경제정책수석은 결과 브리핑에서 "4대 그룹 회장들이 내년 투자를 전년 대비 5.3% 증가한 47조 9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일자리 마련에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 "환율이 걱정이죠? "=비공개 면담이 시작되기 전 접견실에서 노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던 이건희 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사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년 2~3월께 한다고 했으니 그렇게 될 것 아니겠느냐"며 "좋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회장의 임기가 다 됐는데 맡을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엔 "난 아니다"며 "아직 논의되는 게 없다"고 했다.

곧이어 노 대통령이 입장했다. 노 대통령은 강신호 전경련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 회장, 정 회장, 구 회장, 최 회장 순으로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러고는 날씨와 건강을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노 대통령="차 한 잔씩 하셨습니까."

▶이 회장="예. 하고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오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죠? (강 회장에게) 해외 갈 때마다 고생하시죠? (정 회장에게)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접견 장소인 인왕실로 자리를 옮긴 노 대통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려운 경제 여건을 물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노 대통령="올해 상황은 어땠습니까. 기업 상황요."

▶이 회장="조금 힘들었습니다. 환율, 고유가, 불경기 등 때문에…."

▶노 대통령="환율이 걱정이죠."

▶이 회장="예."

▶정 회장="(준비해 온 메모지를 꺼내며) 현대차는 75%가 수출입니다. 환율이 급락하면서 손익면에서 여러 가지로 좋지 않습니다."

정 회장의 발언을 끝으로 면담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청와대 측에선 이병완 비서실장, 변양균 정책실장, 윤대희 경제정책수석, 윤태영 대변인이 배석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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