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궂은 일은 하기 싫다”(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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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도 기능인 부족 “몸살”/건설업체에 뚜렷… 잇단 사고/제조­운수업계도 일손달려 심각… 여자로 대체
일본 건설업체가 심각한 「일손부족」을 메우기 위해 미숙련자를 주요공사에 투입,최근 잇따른 대형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일본 히로시마(광도)시에서는 고가도로 건설현장에서 길이 63m,무게 60t짜리 철근구조물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 지나가던 승용차를 덮치면서 사상자 23명을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16일에는 무게 1백t이 넘는 대형 콤프레서(대형 말뚝박기 중장비)가 넘어지며 인근 주택을 덮쳐 아파트주민·학생 등 2명이 사망했다.
그밖에도 대형 크레인이 작업도중 넘어져 민가를 덮치는가 하면 수로공사현장에서 흙제방이 무너지는등 일본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사고에 대해 한 일본 건설회사 중역은 『옛날엔 기술이 베테랑에서 젊은 사람에게로 순조롭게 전수되었으나 지금은 인력부족으로 충분한 기술이나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건설현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잇따른 사고발생의 원인을 분석했다.
일본은 8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계속적인 경기상승 국면을 맞아 전후 최대경기인 「이자나기 경기」의 57개월간 경기상승 기록경신을 눈앞에 두고있다.
이에 따라 건설·토목업계도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 때문에 심각한 인력부족사태를 겪고 있다.
일본 전국신용금고협회가 지난해 전국 1만3천7백8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인력부족을 겪고 있다』고 대답한 회사는 전업종평균이 68.1%이고 그중 건설업계가 84.2%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건설업자의 57.8%가 「납기지연」,43%가 「수주단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번 히로시마시 고가도로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경우도 아직은 그 원인을 단정하긴 어려우나 기능미숙의 노동자가 다수작업에 참가했던 것이 간접적인 사고원인이 될 수 있다는게 조사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의 조사에 따르면 고가도로공사를 처음 해보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고 심지어 16세 소년까지 공사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건설회사의 기술수준은 세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에 따른 안전대책도 잘 마련돼 있는 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건설업에 종사해온 건설전문가들은 절대적인 인력부족으로 어디엔가 허점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 현재 일본 건설업체의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기계·설비의 진보에 인력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력부족현상은 비단 건설업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본 패스트푸드 업계의 대표주자 「켄터키치킨」은 서비스·제조에 종사할 아르바이트 인력의 보수를 10% 이상 올렸는데도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울상이다.
일본의 월평균 임금인상률이 5% 전후인 점을 감안할때 상당폭의 인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운수관련 부문에서도 인력부족은 마찬가지다.
일본최대의 운송업체인 「야마토운수」는 최근 부족한 트럭운전사 확보방안에 고심한 끝에 여자운전사를 모집키로 했다.
또한 복리후생을 내세운 스카우트 전략으로 사원용 아파트건설,근로시간 단축 등의 호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 노동성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서 기술노동자가 약 1백91만명이나 부족하고 이중 건설작업엔 23만명이 부족하다.
인력문제의 근본적 해결없이는 이러한 대형사고가 일과성에 그치진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신도시건설·지하철공사 등 굵직한 공사들이 줄을 이을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지난 26일 발생한 팔당대교 붕괴사태의 원인을 부실공사에 따른 것이라 발표했지만 그 배후엔 일본과 같은 기술인력 부족탓도 있을 수 있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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