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규제 보완책 있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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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8일 정부가 발표한 대개업그룹에 대한 여신관리제도 개편방안은 몇가지 점에서 그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더이상 대기업의 발을 묶어만 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개방화·국제화의 물결속에서 국내 산업이 외국기업에 먹히지 않고 살아 남으려면 경쟁력을 기를 수 밖에 없고 그러자면 기술개발,기술인력 확보,사회간접시설의 확충 등 내부여건의 개선과 함께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 요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불균형 성장정책에 의해 국제무대에 내세울 만한 대기업을 키워놓고도 경제력 집중의 완화라는 또 다른 요구에 부닥쳐 대기업그룹에 대한 여신을 철저히 규제함으로써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 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대기업들의 기업확장이 국민들의 기대를 벗어난데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고 이 때문에 지금도 여신규제의 완화가 국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냉엄한 국제여건의 변화속에 경쟁시대의 첨병역할을 해야 할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두어서는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
또 하나 여신규제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금융시장 개방이라는 새로운 상황속에서 특정기업에 대한 여신규제가 논리적이나 기술적으로 더이상 지속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외국금융기관이 국내금융기관과 무차별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선진금융기관들이 특정 기업에 대한 대출금지라는 자유경제체제에서는 이례적인 제도에 어느 정도 협력해줄 것인지가 우선 문제이고 협조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것은 새로운 경제마찰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신관리 제도라는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는 제도가 이번의 개편에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철폐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 이번의 개편은 말하자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과도적 조치로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개편안에는 보완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적으로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여건에서 규제의 틀을 풀어 놓기만 하고 보완대책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반발과 저항은 적지 않을 것이며,자칫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이번 조치의 명분마저 무색케 만들어 그 시행을 어렵게 할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개편안을 내놓는데 그치지 말고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찾아 보완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력 집중의 완화문제만 해도 독과점 금지규제법의 합리적 개선과 강화방안을 강구함으로써 그 폐단을 막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한정된 재원이 중소기업에도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밖에 주력업체 선정의 취지를 살리려면 해당기업그룹은 물론,관련금융기관의 건전한 판단이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이 작업과정에서 기업과 은행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이번 개편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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