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명박·박근혜 '지지율 고민' 들여다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빨리 떠서 …
지지율 15 ~ 20%P 차 선두
집중 공격 우려 참모들 단속
새해 사자성어 '한천작우' 골라

이명박 전 서울시장(左)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개인 사무실 ‘안국포럼’에서 송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어려운 한 해를 보낸 국민이 2007년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변선구 기자

성탄절인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천작우(旱天作雨)'란 글이 쓰인 종이를 기자들에게 나눠줬다. 내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본인이 직접 골랐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맹자의 '양혜왕편'에 등장하는 이 숙어는 '한여름의 가뭄에 싹이 말라버려도 하늘은 구름을 지어 비를 내린다'는 뜻이다. 이 전 시장은 "임금이 백성을 도탄에 빠뜨려도 백성의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대선 승리에 대한 본인의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비를 내리게 하겠다는 거냐, 본인이 '비'가 되겠다는 거냐"는 질문에 그는 미소만 지었다.

간담회 곳곳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15~20%포인트 차로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를 유지하는 주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 정보 몰리고 사람 몰리고=29일 당내 대선주자-지도부의 첫 만남을 앞두고 이 전 시장 휴대전화엔 여러 주문이 쏟아진다. "이번 행사만큼은 꼭 와주셔야 합니다." "참석하셔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동안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사이의 중립지대에 서 있던 의원들이 하는 전화들이다. 평소 안부전화에도 인색했던 의원들의 우회적인 접근법이다. 참모들에게도 "내 지역구에 오시기 전에 연락해달라"는 문의가 쇄도한다. 당료들이나 외부 인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도 하루 수십 건씩 이 전 시장의 집무실 책상에 쌓인다.

주로 '경선에 이기는 비법''이렇게 해야 당심을 잡는다'는 유(類)의 보고서들이다. 심지어 "혹시 자문할 것이 있다면 답해 드리겠다"며 문을 두드리는 공무원들까지 있다고 한다. "자원봉사라도 좋으니 일만 시켜달라"며 목 매는 사람도 셀 수 없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전 시장의 개인 사무실 '안국포럼'은 항상 발 디딜 틈이 없다. 모두 이 전 시장의 치솟는 지지율이 만들어낸 모습들이다.

◆ 캠프는"긴장"=이 전 시장이 뜨면 뜰수록 그의 캠프는 비상이다. '이명박 X파일'로 불리는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준비가 더 분주해졌다. 반박을 위한 도상훈련용으로 만든 '자체 X파일'의 내용도 확충키로 했다. '병역''재산''가족관계' 등 큼직큼직한 주제로 만들었던 반박자료를 더 구체화했고, 더 사소한 공격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를 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자꾸 나보고 박정희 전 대통령 흉내 낸다고 하는데….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군복 입고 선글라스 쓰는 가수 '비'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전 시장은 참모들의 정신무장을 부쩍 강조한다. 21일 철원 군부대 방문에 앞서 열린 참모회의에선 "아들의 병역 관련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아들이 복무했던 군부대를 찾아가자"고 했던 참모들이 혼쭐이 났다. 이 전 시장은 "군대 방문이 선거운동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고 했다. '위조를 방지하고 조직원 사칭을 막는다'는 취지로 일련번호를 매겨 논란이 됐던 '안국포럼'의 명함도 곧 폐기 처분할 예정이다. '캠프를 폐쇄적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서승욱 기자

여자라서 …
지지율 밀리는 이유도
지지하는 이유도 '여자라서'
"강한 여성론으로 정면돌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5일 0시부터 명동성당에서 열린 성탄미사에 참석했다. 그는 “아기 예수는 이 세상에 평화와 사랑이 넘치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며 “그런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뉴시스]

"여성 지도자는 위기에 약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편견이다. 역사적으로 영국의 대처 총리나 엘리자베스 1세를 봐라. 우리나라도 어머니를 보면 얼마나 강하냐. 자신은 찬밥 먹어도 자식은 더운밥 먹이고 교육시킨다. 위기에 강한 게 여성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22일 동국대 특강에서 이같이 말했다. '강한 여성론'은 요즘 박 전 대표가 강연 때마다 거론하는 핵심 주제다.

대부분의 강연과 동선이 강한 여성론과 연결된다. 1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강연장의 모습도 그랬다. 청소년 단체 등이 주최한 가정문화포럼의 특강에서도 박 전 대표는 공격적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이 국가적 위기에 여자라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여기에 안 계시죠? 계시다면 출구는 저쪽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손은 출입구를 향했다. 부드러운 농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하는 말이지만 평소 박 전 대표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강한 화법이다. 그의 여성 관련 발언엔 날이 갈수록 힘이 실리고 있다.

◆ 절반 이상이 "여자라서…"=박 전 대표 캠프에선 최근 여론조사를 두 차례 했다. 지지층과 비(非)지지층의 성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글로벌리서치의 13일 조사에선 응답자의 51.2%가 이같이 답했다. '아버지 후광.영향'(6.2%)이나 '추진력 부족'(5.8%) 등 다른 이유를 압도했다. 14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 비지지층 중 51.1%가 여자인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문제는 두 조사의 응답자들이 박 전 대표의 최대 강점으로 '여자라는 점'(미디어리서치 17.1%, 글로벌리서치 14.4%)을 꼽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라는 게 최대 장점이자 약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자연스레 '여성'은 박 전 대표 측 최대 이슈가 됐다.

◆ 여성으로 승부 건다=21일 충북을 찾은 박 전 대표는 "여성의 몸으로 한나라당 대표를 2년 반 했다. 그동안 여당 대표는 남자로만 여덟 분(정동영.신기남.이부영.임채정.문희상.정세균.유재건.김근태)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남자보다 정당을 잘 이끌었다는 메시지다.

이날 모친인 육영수 여사 생가가 있는 옥천에선 "어머니 임종도 못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마음속에 있다"며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머니 역할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캠프에선 외국 여성 지도자에 대한 성공 사례 분석에 나섰다.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국내 갈등을 청산해 국민 화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바첼레트 대통령과 외국어에 능한 박 전 대표의 이미지를 어떻게 결합시킬지가 과제다.

아버지가 암살당하는 불운을 극복하고 대통령에 오른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전 대통령, 투옥과 망명 생활을 거듭한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도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 준 케이스다. 박 전 대표는 신년 벽두부터 이들 '여성 지도자'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정면 승부'에 나설 구상이다.

강주안 기자<jooa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