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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美서 운전땐 '사슴 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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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의 도로에는 종종 사슴주의 표지판이 서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구경거리로 보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해마다 운전자 약 1백30명이 사슴 때문에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길로 뛰어든 사슴과 충돌하거나, 사슴을 피하려다 차가 구르며 사고가 나는 탓이다. 전미 고속도로 보험 연구소(IHS)는 올해는 사슴 번식률이 더욱 높아 총 1백50명이 숨지고 2만9천명이 다칠 것이라는 전망을 8일 내놓았다. 이로 인한 사고 보험액수도 11억달러로 예측됐다. 물론 사슴도 올해 1백50만마리쯤 교통사고로 죽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람까지 뜯어먹는다는 회색곰(그리즐리 베어)이나 사자의 일종인 쿠거에게 목숨을 잃은 숫자는 지난 1백년 동안 각각 1백28명과 14명에 불과했다. 결국 사슴은 북미대륙에서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인 셈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미시간.오하이오.미네소타.위스콘신 등 미국 북부지역의 주정부는 그동안 사슴 사고를 줄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사슴주의 표지판을 사고 다발 지역에 집중 배치한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주는 최근 5년 동안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아도 사슴에게는 고음으로 들리는 초음파 발생기를 고속도로 주변에 설치하기도 했다.

숲속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어귀에다 경고등을 설치하기도 하고, 사슴의 목에다 전파목걸이를 달아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그러나 결과는 백약이 무효. IHS의 짐 해들런드 소장은 "도로 주변에다 철망을 세우는 게 현재로선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생태계 파괴에다 주민들의 반발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운전자가 사슴주의 표지판을 철저히 준수하고 숲속에선 안전운전을 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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