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제2의 탄핵 유도 계산 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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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하는 원고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나라당은 22일 하루 종일 부글부글했다. 의원들은 "더 이상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낄 정도"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의 언행 속엔 '제2의 탄핵' 유도 등의 계산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측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 "궁예의 말로 보는 것 같아"=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노 대통령이 또다시 막말을 자행했다"며 "마치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의 말로를 보는 것 같은 처연한 심정"이라고 말을 꺼냈다. 의원들 사이에선 "정신병자" "사이코" 같은 극한 표현들이 나왔다. 우선 노 대통령의 거친 표현들이 도마에 올랐다. 박진 의원은 "국가원수로서 외국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9.19 공동성명 서명과 미국 재무부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북한 계좌 동결 조치를 언급하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표현을 쓴 데 대해서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군 훈련을 '뺑뺑이'라느니, 대통령 스스로를 '굴러들어온 놈'이라고 하는 식의 표현이 국민 앞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냐"고 따졌다. 군 복무를 '썩는다'고 한 말도 문제가 됐다. 김희정 의원은 "국가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군대에 간 병사들의 자긍심을 깡그리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정병국 의원은 "대통령이 탄핵 사태 후 복귀하면서 고 전 총리를 얼마나 칭찬했느냐"며 "이제와 누워 침을 뱉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발언 속에 '고도의 계산'이 숨어 있다는 분석도 많았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범여권에 자신의 정치 세력을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대통령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지지세력 결집과 반대세력의 반발을 불러 '제2의 탄핵'을 유도하려는 계산이 깔렸다"고 풀이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자신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정파보다 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남 탓을 하지 말고 자기 성찰부터 하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정치가 아닌 국정에 전념해 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대통령이 이런 식이면 남은 1년 동안 서민은 죽어난다"며 "제발 국정에 전념해 달라"고 했다.

◆ "통합신당파 싸잡아 공격"= 열린우리당은 구체적인 반응을 삼가려 했다. 국회 당 의장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지도부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냉소와 격분이 혼재했다. 당사자인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은 말을 아꼈지만 측근들에게선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당 관계자는 "두 진영 모두 노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간을 두고 그 발언을 곱씹어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 의장 측에선 노 대통령 발언의 파장을 주시했다. 문학진 의원은 "여권의 대선 주자 3인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과 관련해 다른 그림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 측은 신중했다. 우윤근 의원은 "당혹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 의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정 전 의장이 통합신당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통합신당파를 한꺼번에 공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신용호.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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