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남의 일에 참견 말라고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론과 실전을 표리부동하게 가르친 어른들 덕분에 아이들은 대인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후에야 허둥지둥 관계의 기술을 배우느라 진땀 빼게 되는 건 아닐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아기 예수의 성탄절에 매튜 스위니의 '아저씨, 소년 그리고 여우'(아리솔)를 권한다.

소년은 어느 날 거리풍경의 하나에 불과했던 노숙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관심은 선원으로 세상을 두루 섭렵한 아저씨에 대한 동경으로 발전하고, 굳건한 우정의 결속으로 이어진다. 선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소년의 물음에 아저씨는 답한다. "가는 길을 알기 위해서는 지리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면 역사가, 또 떠나 있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 세려면 수학이, 책이나 편지를 읽으려면 읽기가 필요하지."

"그들 중 누가 앞서 간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나란히 걸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가슴 새큰한 이 이야기는 우리 손에 뒤쳐진 이웃과의 '동행의 초대장'을 슬그머니 쥐어주고 끝난다.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동녘)에서 말썽꾸러기 제제를 훌쩍 철들게 하고 삶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 건 낯선 뽀르뚜가 아저씨였다.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사계절)에서 고독한 서머에게 그 어떤 상실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임을 가르쳐 준 것도 타인으로 만난 메이 아줌마였다. 메이 아줌마는 우리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인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이론서가 나달나달해지도록 빨간 줄을 그었지만, 아직 타인과 진정한 공감을 이뤄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면 오늘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타인이란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라는 미치 앨봄의 말을 곱씹어 보면 어떨까. 엄마.아빠가 백 권의 이론서에서 체득하지 못한 인간소통의 비밀 코드를 불현듯 깨닫는 아이의 영특함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대상 연령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워야할 10세 이상의 어린이와 연말연시용 반짝 이웃사랑이 부끄러운 어른들.

임사라 동화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