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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김석환특파원 현지취재/흔들리는 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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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폴로스코프 러시아공 제1서기 본지인터뷰/“소 공산당기반 아직 든든”/개혁이념 급진파에 의해 퇴색/보수독재 출현 우려는 큰 오산
소연방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일어선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공화국,그리고 급진개혁파가 시장으로 있는 모스크바에서도 탈연방문제에 관한 인식이 반드시 통일돼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급진개혁파 및 분리파들은 『연방 해체는 필연적』이며 『현재의 소련제국을 유지하려는 보수파와 공산당의 노력은 시대착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도 보수파들의 상황인식은 이와 정반대였다.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이 극우라고 지목,「검은 대령」으로 호칭한바 있는 빅토르 알크스니스 대령은 지난 8일 모스크바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소연방의 분열은 내전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세계 제3차대전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알크스니스 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만난 에스토니아 공산당 제1서기 렘비트 아누스의 견해도 이와 비슷했다.
이들은 소련 인민들에게 현재 소련이 당면한 국가현실과 이에 대한 공산당의 대응책,사명감,노력 등이 정확하게 전달되고 소련 인민들의 의사가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다면,인민들이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러시아공화국의 주권선언 등으로 개혁파가 한창 기세를 올리던 때 창당돼 보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해와 주목을 끌고 있는 러시아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 이반 폴로스코프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소련 공산당의 새로운 세대를 리드하는 신기수라고 호칭되고 있는 폴로스코프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공산당이 과거와 같이 소련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앞으로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공산당은 과거와 같이 소연방 정치생활에서 중요한 최고의 역할을 할 것이다.
소련 인민들은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다.
공산당은 아직도 대부분 지방소비예트나 기타 지방의 사회조직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공산당이야말로 소련의 재건(페레스트로이카)을 시작한 조직이며,오늘날 소련사회에 다당제를 가져온 조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련사회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바로 공산당이다.』
­공산당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페레스트로이카를 평가한다면….
『페레스트로이카의 원래 이념은 옳았다. 지난 85년 시작된 이 운동의 첫번째 목표는 사회주의의 재해석이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목표는 88년까지 밖에 추진되지 못했다. 진정한 페레스트로이카를 위한 노력은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세력에 의해 훼손됐다.
이들은 현존하는 소련의 사회주의적 정치구조를 파괴하는 것을 주요목표로 삼았으며 이는 곧 쿠데타였다.
그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목표를 이용,공산주의자들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갔으며,이로 인해 소련사회는 분열이 심화되고 위기가 심각해졌으며 목표나 방향도 없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최근의 소련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련의 보수화경향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고,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은 「독재출현」을 경고한바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나는 셰바르드나제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독재를 꿈꾸는 자들도 있으나 독재는 정치구조의 붕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8년전 발생한 KAL기 격추사건에 유감을 나타냈다.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 비극은 군사대결의 긴장이 첨예했던 시기에 발생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지나갔으며,이제 우리는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대결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해야한다.』
이어 그는 『이 인터뷰 기회를 이용,한국민들에게 소련 최대 정치단체의 지도자중 한사람으로서,그리고 전체 러시아인을 대표해서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모스크바에서>PN JAD
PD 19910320
PG 05
PQ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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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P
CK 04
CS A04
BL 2482
GO 장두성칼럼
GI 장두성
TI 썰렁한 유세장 나쁠 것 없다(장두성칼럼)
TX 겨우 두번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기초의회선거의 합동유세장에 유권자들이 전혀 모여들지 않는다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때문이라고도 하고 너무 엄격한 당국의 「공명선거」감시때문에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거기에도 원인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이유보다도 선거유세를 들으려고 광장에 사람을 끌어모으는 방식이 이제는 낡은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추세는 바람직한 변화이며 앞으로 있을 모든 선거에서 더우 뚜렷한 경향으로 굳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이유를 이야기 해보자. 군중집회란 원래 군중심리를 이용한 대중조작의 가장 원시적 방법이다. 히틀러가 애용했고 무솔리니가 애용했던 것이 바로 이 방식이다. 보다 조직적이고 기계적으로 군중집회를 대중조작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스탈린,모택동,김일성,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페론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철권의 독재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군중집회의 장점은 연단의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군중들에게 주입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군중속의 개인이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이른바 「구속된 청중」의 전형적 상황이다. 그래서 군중집회는 독재자에게는 안성맞춤의 정치도구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 전혀 다른 배경속에서 군중집회가 생겨났다. 이승만 독재 아래서 언로가 막힌 국민들은 자신들이 내놓고 말못하는 분노를 야당 지도자들이 대신해서 권력자를 사정없이 쏘아대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고 한강 백사장을 메울 정도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화풀이요,한풀이로서 군중들 스스로가 대중조작을 자청한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에 십리를 멀다않고 몰려들었던 시민들의 열정은 결국 4·19를 일으키는 원동력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군중집회는 비정상적인 정권아래서 있을 수 있는 비정상적 정치행사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왜곡된 정치행사의 전통은 지난번 대통령선거와 총선에서 타락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울분을 대변해줄 사람의 말을 듣겠다는 관심보다도 1만∼2만원의 일당을 벌기 위해 동원된 경우가 많았고 한쪽에서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과시하기 위해 수백대의 버스로 지방에서 청중을 동원해 왔다. 청중은 결국 자기들이 목말라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기 보다 정치인의 들러리로서 품팔이가 된 예가 허다했다.
아직은 필자의 아전인수격 해석일 가능성이 크지만 합동유세장에 유권자들이 잘 모이지 않는 현상은 일방적 세뇌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어느 정도는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일부 지방에서는 거창한 정치구호보다는 내고장의 구체적 문제에 대해 후보자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참여의식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 현상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우려면 당연히 이 추세가 번져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행 선거법은 금지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는 고대 희랍의 경우처럼 노인정 등 소규모 공공장소에서 대화가 가능한 토론회 같은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광역의회선거는 유권자수가 훨씬 많아 이런 방법이 어려울 것이다. 이 경우는 공개홀 같은 곳에서 토론회를 갖고 토론자들로 하여금 청중을 대신해 후보의 정견을 따져도 될 것이다.
이 경우도 선거법이 문제라면 고쳐야 된다.
또 TV 공개토론 같은 것도 가능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제 우리 정치에서 유권자를 들러리로 이용하는 행태는 더 이상 후보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수 없게 되었으며 유권자들은 이런 토론아닌 일방적 설득형식을 거부해야 된다는 점이다.
정치 선진국에서 대중집회를 선거운동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언론도 이 점을 보도에 명확히 반영할 책무가 있다. 군중 집회때마다 정치지도자들을 뒤로 돌려세워 군중을 배경으로 삼는 사진은 찍지도,싣지도 말아야 한다.
청중들을 향해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 투쟁하겠노라고 장광설을 늘어놓던 지도자가 사진찍을 때면 당연한듯 청중들을 등뒤로 하고 사진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는 짓거리는 정치인들이 일상활동에서 유권자를 뭘로 취급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늘 우리 정치가 정파이기주의만 있고 정책은 없다고 비판해왔다. 그대로 두면 정치인의 그 오랜 습성이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바꾸려면 정치인으로 하여금 유권자들에게 책임감을 갖게 만들어야 된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 그들을 저 높은 연단에서 끌어내려 유권자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는 것이다. 혼자서 구호의 나열에 불과한 연설로 청중들을 이리저리 멋대로 몰아내려는 그 연단을 부숴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도 군중집회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기본개념과는 동떨어진 행사라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텅빈 유세장이 제발 그런 인식에 바탕을 둔 의식적 외면이기를 바란다. 그런 대중집회를 앞으로 모든 단계의 선거운동에서 몰아내고 참다운 대화정치·이념정치를 정착시키는 새 출발이 이번 기초의회선거의 썰렁한 유세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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