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용@2006문화계] 전문가 7인이 뽑은 올해의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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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무리 순수 예술이 어렵고 찬바람이 쌩 분다 해도 자기 길을 가는 이들은 그리고 빛나는 작품은 있게 마련이다. 2006년 연극.무용계가 거둬들인 최고의 수확이라 할 만한 작품을 하나씩 추려봤다. 이름하여 전문가 7인이 선정한 '올해의 연극.무용 작품'이다.
연극 분야에선 극단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 아버지'가, 무용 분야에선 전미숙 무용단의 '가지 마세요'가 뽑혔다.

◆연극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

한국 전쟁 뒤 척박한 상황

담담하게 그려내 더 큰 울림

2000년대 들어 '청춘예찬' '선착장에서' '서쪽 부두' 등 해마다 문제작을 쏟아낸 박근형 연출가는 올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신작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호평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의 척박한 상황을 담담히 그려내 더 큰 울림을 주었다"란 평가를 받으며 5표를 획득(복수 추천 허용), 연희단거리패의 '억척 어멈과 그의 자식들'(4표) 을 간발의 차로 누르고 올해의 연극으로 선정됐다. 박근형(43.사진)씨와의 일문일답.

-이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작에선 유독 경상도 사투리가 많은데.

"경상도 언어의 말 맛이 있다. 담백하면서 심한 억양에 의한 꺾임의 운율이랄까. 또 가부장적이면서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경험담을 녹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숙이는 우리 누나 이름이다. 내가 어려울 때 늘 도와주고, 돈도 꿔주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싶어 제목을 지었다. 그렇다고 나의 경험과 기억에만 의존한 건 아니다. 내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고, 고2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들어갔지만 굳이 비율을 얘기하자면 30% 정도밖에 안 된다."

-예전 작품과 차별성이 있다면.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식의 내 색깔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다만 과거에서 현실로 이동하거나 그리스도 재림과 같은 상상의 장면을 보여주는 등 공간을 자유롭게 썼다. 기존의 극사실주의 방식에서 좀더 확장된 것 같다."

-대본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난 대본에 지문 같은 걸 잘 적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배우의 몫이기도 하다. 텍스트에 얽매여 있으면 배우의 잠재력을 100% 뽑아낼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다."

-그래서 연습 한 시간, 술 마시는데 5시간이란 얘기가 나오는가.

"(웃음) 과장이다. 다만 무대와 일상을 구별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삶이 육화될 때만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믿는다. 나와 단원들, 그리고 단원들끼리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 7인(가나다순)=김방옥(동국대 연극영상학부 교수), 김윤철(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김의숙(공연기획사 파임 대표), 박현숙(극단 미추 기획실장), 심재찬(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 염혜원(한국연극 편집장), 오현실(공연기획사 이다 대표)

◆무용

무용 '가지 마세요'

현대적 감각 … 뛰어난 테크닉

조형미 살린 무대장치 돋보여

다작을 하진 않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인 전미숙(48.사진)씨는 작품을 낼 때마다 일정 정도 이상의 수준을 항상 유지해 무용 애호가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현대 무용가다. 올해엔 서울무용제 대상작인 '가지 마세요'를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현대적인 감각, 무용수들의 뛰어난 테크닉, 조형미를 살려낸 무대 장치"란 호평 속에 전문가 5인의 지지를 받았다. 전미숙씨와의 일문일답.

-이번 작품을 본인이 설명하자면.

"역설의 작품이다. 제목은 '가지 마세요'란 청유형이지만 내용은 죽음과 이별 등을 얘기한다. 궁극적으론 냉소적인 인간 관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의 구조보단 미니멀하고 차갑게 무대를 꾸몄다."

-'반갑습니까' '나팔꽃이 피었습니까' 등 최근작들은 의문형으로 끝나는데.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싶었다. 겉으로 매너 있고 세련되게 얘기하지만 돌아서면 딴소리 하는 게 우리의 모습 아닌가. 마침표보단 여운을 두고자 했다."

-본인의 작품 스타일을 말하자면.

"유럽 현대무용의 최근 경향은 몸을 중시하면서 극단적인 신체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오히려 난 무용수의 테크닉에 초점을 두고 있다. 훈련이 잘 된 무용수의 최대치를 끌어내고, 스피드를 살리면서도 주제적 동작을 반복하거나 다양한 변주를 줌으로써 무용의 보는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키고 싶다."

-상시 무용단을 운영하는 게 아닌 프로젝트식 무용단인데.

"학교에 있다 보니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용단을 계속 꾸려나갈 수 없다. 다만 내 스타일을 충분히 이해하는 제자들이 주로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단시간 내 작업하고 호흡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남성 무용수에게 치마를 입히는 등 페미니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인데

"대립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 전복적이거나 남성 우월주의를 넘어서야 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여성성을 최대한 강조하는 게 내 작품 스타일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다 보니 오히려 페미니즘으로 인식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전문가 7인(가나다순)=김경애(댄스포럼 발행인), 김지희(몸 수석기자), 문애령(무용평론가), 성기숙(무용평론가), 이종호(무용평론가), 장승헌(공연기획사 MCT대표), 장인주(무용 칼럼니스트)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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