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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후보사퇴 알쏭달쏭/야 규명 촉구… 물증없어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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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건강때문/관권개입/정당조정/금품매수
시·군·구의회선거 후보등록 후 사퇴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어 관권개입·정당의 배후조정작업·후보자간의 매수행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사퇴자들은 등록후 합동유세 등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가 보지도 않은채 「일신상의 이유」「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일찌감치 백기를 들어 사퇴배경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이 나오고 있다.
평민·민주당 등 야당들은 후보사퇴가 속출하고 있는데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고 수수방관하던 선관위와 검찰도 매수·담합·압력여부 조사에 나서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
○…선거공고일인 8일부터 마감일인 13일까지 등록후 사퇴자는 39명에 불과했으나 합동연설회가 시작되기도 전인 14일과 15일 사퇴자가 속출,각각 32명과 28명으로 모두 99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14일에는 15개 선거구 20명이,15일에는 14개 선거구 17명이 무투표당선이 확정돼 무투표지역은 4백70개 선거구 5백84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문제는 14일의 경우 32명 사퇴로 20명이 무투표당선됐고 15일에도 28명이 사퇴,17명이 당선확정된데서 나타나듯 사퇴지역의 대부분이 의원정수 2명에 3명이 입후보한 지역이거나 의원정수 1명에 2명이 입후보한 곳이라는데 있다.
이런 지역들은 상대편 후보자중 1명만 사퇴하면 자동적으로 무투표당선이 확정된다.
사퇴할 경우 2백만원의 선관위 기탁금을 찾아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퇴배경에 흑막이 있으리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매수가능성·정당의 내부조정·압력설 등이 나오고 있으나 선관위 관계자들은 『수사는 검찰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고 검찰이 일단 수사에 나서기로 했으나 「물증」이 나타나지 않는 한 진상규명도 어려울 것 같다.
내마을 일꾼을 뽑는 기초의회선거가 국회의원선거처럼 과열·타락으로 점철돼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선택할 기회마저 없어진다면 지자제정착에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다.
15일 현재 사퇴자는 서울시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경북 12명,충남 11명,경남·인천이 각 9명,대구·경기가 각 8명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고 광주는 1명,전남 5명,전북 6명 등으로 평민당 일색인 호남지역이 비교적 적다는 것도 음미해 볼만한 통계다.
○…평민당은 시·군·구의회의 친평민당 소속 출마자가 민자당에 비해 현저한 약세를 보일때부터 이를 「공안선거」로 몰아붙이면서 △통반장·이장의 특정후보 지지 및 동원행위 △공무원의 정부업적 홍보 등과 △정보기관의 특정후보 사퇴종용 및 선거운동 방해행위를 꼽았다.
여권내 후보조정이나 야당·순수무소속에 대한 간접사퇴압력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인데 『안기부·국군기무사의 입후보자에 대한 자료수집활동이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일선경찰서·구청·선관위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민당은 정보당국이 이 자료를 가지고 민자당 지구당 등과 협의하여 후보조정압력을 넣고 있다고 몇가지 사례를 발표했다.
또 민자당은 대전 동(을) 지구당의 경우 후보등록 과정에서 출마자 15명의 입당을 종용하는 등 4개 지구당에서 50여명을 입당시켜 야권·무소속에 타격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이같은 관권개입→후보조정 등의 구체사례를 백서로 만들기로 했다.
이기택 총재는 15일 『안기부의 요청으로 후보를 자진사퇴한 약사 한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박계동 총재단 비서실장은 자신의 지역구(강서 갑)에 사는 친민주당 성향의 페인트업자가 강서경찰서 정보과형사로부터 성향조사용 전화 한통을 받고 부인이 강하게 만류,출마를 포기했다고 소개했다.
노무현 의원은 『부산지역은 정당이 참여하면 대단히 부도덕한 일이라도 되는 것 같은 숨막히는 분위기』라고 전하고 『이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조성해가는 정부의 구체적 사례를 모으고 있으며 선거후 이를 공개해 여론 재조정작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김두우·전영기기자>PN JAD
PD 19910316
PG 03
PQ 03
CP HS
CK 02
CS A04
BL 1390
GO 사설
TI 「무투표당선」 확산 문제있다(사설)
TX 30년만에 실시되는 지방의회선거를 앞두고 많은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되고 등록을 마친 후보의 출마사퇴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후보등록 마감 당일 단일후보 등록으로 유권자들의 투표없이 당선이 확정된 사람은 전체 시·군·구의원 수의 12.7%인 5백47명에 이르는 이변을 낳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미 입후보등록을 마쳤던 후보들중에 무려 72명이나 되는 숫자가 불과 이틀사이에 후보를 사퇴했고,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물론 후보 자신들의 개인적인 상황 판단이나 심경변화에 따라서는 후보사퇴가 있을 수 있는 일이고,또 이런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존재이유를 놓고 볼 때 그 배경이야 어떻든 주민들로부터 한표도 얻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들의 대변자를 자칭할 수 있겠는가.
또 최악의 경우 후보들간에 돈을 주고받거나 학연·혈연 등 수단으로 다른 후보의 사퇴를 결과케 했다면 이는 유권자의 투표권을 인위적으로 박탈해 이를 독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방자치제에 대한 일반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가져온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밑동부터 허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무투표 당선」이란 용어자체에 모순이 있다. 뽑힌 것이 아니라 요행을 잡았을 뿐인 것이다.
이처럼 국민의 신임 한번 묻지않고 당선된 의원들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주민들이 그 지방의회에 대해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의회」라는 대표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무투표 당선이란 또한 국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입후보자에 대한 정보의 취득과 신임의 기회마저 봉쇄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이다. 투표없이 당선이 확정되므로 후보자의 경력을 밝히는 선전벽보를 붙일 필요가 없다.
후보자의 사진과 성명·주소·연령·경력·정견을 소상하게 기재하는 선거공보도 유권자에게 보낼 필요가 없다.
후보자의 사람됨됨이와 말의 진실성을 가늠할 수 있는 선거유세도 하지 않는다. 결국 유권자는 자기 선거구에서 무투표의 요행을 잡은 대변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어야만 된다. 현행법상으로는 무투표 당선이야말로 입후보자 쪽에서는 최선의 조건이고 유권자들 편에서 보면 있으나마나한 선거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후보사퇴의 속출사태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당측은 후보들간의 조정이나 개인적 결심으로 보는 반면 야측은 공안기관의 협박·회유로 야권후보를 사퇴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야의 주장을 가릴 것 없이 그 진상은 철저히 조사해서 밝혀져야 한다. 어느 쪽이든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민주정치의 기초를 망가뜨리는 이런 행위는 엄격한 감시와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후보의 단독출마가 불가피한 경우라도 유권자가 그에 대한 대변자로서의 신임을 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관계법의 보완작업도 서둘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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