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종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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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루는 고르비(고르바초프)가 신에게 물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신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대답했다. 『물론 가능하지. 그러나 내 임기중엔 무리야.』 요즘 소련사람들이 주고 받는 조크의 하나다.
뉴욕 타임스지의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빌 킬러 기자는 최근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와 『고르바초프,신뢰의 종말』이라는 글을 썼다. 킬러 기자는 그 글속에서 페레스트로이카의 시말을 보여주는 두번의 전화사건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나는 1986년 12월 고르비가 고리키시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사하로프박사에게 전화를 건 일이다.
이때 고르비는 반체제 인사의 해금과 함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 시대의 개막을 통고했다.
과연 고르비의 개방정책은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 분단독일의 지도가 같은 색깔로 바뀌었고,미국과 소련의 밀월관계는 걸프전쟁을 겪으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동유럽의 공산정권 붕괴도 상상을 넘는 일이었다.
그 연출자 고르비가 지난 1월13일 멀리 리투아니아의 대통령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거절했다. 그는 전화응답 대신 리투아니아의 리가시로 소련 탱크를 보냈다. 이들은 독립을 외치는 리투아니아인들에게 닥치는대로 기관총을 쏘아댔다. 바로 그 총성은 고르비의 개방정책이 이제 막을 내렸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했다.
요즘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중에 뒤죽박죽이 아닌 것은 거의 없다. 고르비는 분명 각 공화국의 자치권을 존중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중앙정부의 권한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시장경제를 선언한지는 벌써 몇년이 지났지만 토지의 사유화는 여전히 규제되고 있다.
관료조직,군,KGB는 당연히 고르비의 오른팔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은 거꾸로 보수세력과 손잡고 고르비에게 냉소를 보내고 있다. 고르비는 당장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 급하게 되었다. 그는 부랴부랴 핸들을 「개방과 개혁」쪽에서 「보수」쪽으로 꺾기 시작했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못챌 소련 사람은 없다. 옐친 같은 급진개혁파 지도자는 이 기회에 깃발을 올리지 않으면 밀리기 쉽다.
요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등 중요도시에서 『고르비,네트(노),옐친,다(예스)』의 데모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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