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소외된「8도의 삶」문학으로 승화|성남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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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강의 기적, 88올림픽의 신화 등 민족의 저력과 근대화의 결실을 한껏 뽐내며 드러낸 잠실. 한강을 굽어보는 고층 아파트 군과 초호화 호텔 등…
잠실벌이 다해 남한산으로 기어드는 골짜기 골짜기들 사이에 성남은 숨어 있다.
백제 시조 온조 왕이 기름진 한강 유역에 도읍 위례성을 정하면서부터 쌓여지기 시작, 병자호란 때는 한양 최후의 보루로 남아 결사항쟁 45일만에 청에 무릎 꿇어야 했던 역사를 지닌 남한산성. 한강 유역의 삶과 부를 지키기 위한 남한산성 그 바깥, 그 밑에 한강의 부에서 쫓겨 난 사람들이 일군 도시가 성남이다.
1969년5월2일 서울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남한산자락에 천막을 치면서부터 성남은 탄생된다.
서울인구의 팽창을 막기 위해 서울의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철거민들을 근교의 가장 버려진 땅에 대책 없이 내던지면서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선 입주 후 건설」이라는 성남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저희들이 왜 여기에, 버려졌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저희들은 서울 사람들이 썩은 가래침만 뱉던 곳에 그냥 밀려 앉은 눈알 빠진 무덤들이지요』(정의홍「성남시 어느 마을」중)
6·25로 황폐화된 50년대의 농촌,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면해 볼 양 고향을 등지고 서 울로 서울로 밀려와 청계천변이나 산등성이에다 무허가 판자 집 짓고 돈벌이로 바둥대던 사람들. 고향에서 쫓겨 온 사람들이 다시 서울의 도시개발에 밀려 쫓겨난 곳이 성남이다.
8도의 고향에서 뿌리 뽑혀 모여든 사람들이라 성남시민 스스로들「8도시」, 뿌리 없이 흔들리는「정평시」라고도 부르나 전국도시 중 유일하게 8도 장꾼들이 모여 인심과 물건을 팔고 사는 향토5일장 모란장을 가지고 있듯 성남도 8도를 비벼 낸 나름의 문화 찾기에 부산하다.
성남에 문단활동이 인 것은 1975년. 도시건설 전 2만6천명의 인구에 불과했던 마을에 지나지 않았으니 토착문인도 없고, 73년 시로 승격됐으니 그야말로 불모지에서 초고속으로 문단이 선 것이다.
75년 여름 권기흥·배정웅·이재범씨 등 이 주동이 돼 문학도들을 규합, 한국문인협회 성남지부를 창립함으로써 문 협이 성남문화 단체로서는 가장 빠른 출발을 보이게 됐다.
결성직후 성남 문협은 시화전을 개최,「우리 성남에도 문화가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후 명실상부한 작품을 쓰는 문학단체임을 알리기 위해 회원들간의 합평회 등을 통해 작품을 다듬어 77년 기관지『성남문학』을 창간하기에 이른다. .
문협은 또 1980년「성남문학상」을 제정, 지역 문인들에게 매년 수상함으로써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1981년부터는 중앙문인들을 초청, 문학 강연회를 수시로 가짐으로써 시민 및 문학도들의 문학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결성당시 등단문인이라곤 2명밖에 없어 3명이 넘어야 문협 지부를 결성할 수 있는 문협 정관 상 1명의 문인을 타지에서 꿔 올 수밖에 없었던 성남 문협은 80년대 들어서면서 김병학·장 렬·최석운·이지엽·김만태·김건중·신남희씨 등을 시·소설·동화 등 부문에서 중앙문단에 내보냈다.
회원들의 등단으로 도약의 나래 를 펴기 시작한 성남 문협은 87년 소설가 김건중씨가 회장을 맡으면서부터 그 동안의 동호인적 체제에서 등단문인 체제로 체질을 개선하고「문학시대동인」을 결성하면서 성남문학의 자생적 세를 확산시켜 나가게 된다. 김건중·문광섭·장렬·신난희씨 등 등단문인들이 시내 각 직장이나 단체에서 추천 받은 20여명의 문학도들과 함께 결성한 문학시대동인은 성남 문협의 외곽 단체로서 지역문학의 기반확충을 위한 창작교실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다.
이들은 매월 정기적인 문학토론회를 여는가 하면 중앙문인을 초청, 문학강좌를 열어 문학수업을 받으며 현재 동인지『문학시대』를 3집까지 내고 있다. 현재 각 장르를 망라, 11명의 동인을 가지고 있는 문학시대 동인 회는 그 동안 동인 중 증재록·박문식·김 경·김경란·김성숙·김성옥씨를 시·소설로 중앙문단에 데뷔시켰다.
성남에서도 자생적으로 문인을 배출할 수 있다는 문학시대 동인회의 성공적인 활동에 힘입어 성남 문협은 성남에서 태어난「성남 1세대」문학을 창출키 위해 앞으로 문학창작교실도 개설,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등단문인 2명으로 출범한 성남 문협은 이제 대부분이 등단한 회원 41명을 가진 단체로 성장했다. 불모지에서 태어났기에 자신들이 전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이들은 그러나 아직은 성남정서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회원들 제각각 두고 온 고향의 정서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남 1세대문학을 산출하려는 이들의 노력으로 보아 8도의 한·정서가 멋드러지게 어우러져 승화된 성남의 향토문학을 맛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성남=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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