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홀로 선「패션계 대모」따라|네 남매 모두 한길|최민자씨 댁 패션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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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 가정의 여성이 홀로 시작했던 일이 다음 세대에서 남녀구별 없이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가업으로 확대 계승돼 자리 잡기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국내 최초의 양재학원 설립자로「패션계의 대모」가 되고 있는 최경자씨(80·재단법인 국제패션디자인 연구원 및 국제복장학원 이사장)의 경우 슬하의 4남매가 모두 패션계에서 일하고 있어 가업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최 여사의 장남 신현우씨(51)는 국제패션문화사를 경영하며 국내 패션디자이너들이 작업현장에서 창조할 수 있도록 해외의 최신 디자인 정보를 묶은『패션정보』를 월간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차남 현장씨(45)는 서울대 응미과를 졸업한 후 세계적인 패션 스쿨인 미국뉴욕의 FIT로 유학, 현재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다.
이대 미대를 졸업한 차녀 혜옥씨(48)도 현재 하와이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자녀들 중 장녀인 혜순씨(53)는 특히 패션디자이너 겸 교육자인 어머니 최씨를 그대로 본받아 현재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및 국제복장학원 원장으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가업의 창시자」인 최씨가 양재를 공부하게 된 것은 극히 우연한 일이다.
함남 안변 태생으로 원산 루시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형제들과 함께 일본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무사시노 사범과에 다니던 최씨는 자취방의 윗집에서 다림질하다 잘못돼 불이 나자 갖고 있던 피아노를 팔아 재봉틀로 바꾸고 양재공부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던 최씨는 결혼하면서 형제들과 함께 경영하던 은좌옥의 양장점을 그만두게 되자 1938년 함흥양재학원(현 국제복장학원 전신)을 개설하고 후학지도에 나섰다.
학원이 개설되던 해에 태어난 혜순씨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학생들이 실습하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인형 옷을 해 입힐 정도로 손재주가 있었으나, 함께 놀아 주지 못할 정도로 「바쁜 엄마」가 미워 자신은 절대로 직업여성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다지곤 했다.
그러나 결국 이화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후 미국 FIT로 유학,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가게 된데 대해 그는「환경 탓」으로 돌린다.
혜순씨는 뉴욕에서 10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끝에 자신의 뒤를 이어 후학을 양성해 달라는 어머니 최씨의 권유를 받아 들어 71년 국제복장학원 부원장으로 합류하게 됐다.
국내에서 양재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쟁이」로 천시되던 직업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교육내용도 기술 습득을 중시하던 것에서 아이디어 창출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혜순씨는『앞으로 KS패션 장학회를 설립해 재단사·재봉사·디자이너 등 패션 각 분야의 우수한 인력을 키워 내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또 지나간 양장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양장의상박물관도 만들어 디자이너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어머니와 저의 꿈입니다』라며『미FIT에서 패션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딸(김용희·26)이 가업을 이어 이런 2대에 걸친 소망을 이룩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환히 웃는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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