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기 전술」로 이변 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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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북한 팀이 아이스하키 종주국인 세계 정상권의 미국을 5-4로 격파, 동계유니버시아드 사상. 최대의 파란을 일으켰다.
북한은 4일 쓰기사무링크에서 벌어진 미국과의 예선 2차 전에서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다소 생소한 (아이스하키에서는) 전법을 구사하며 미국과 체력전을 전개, 예상 밖의 이변을 이끌어냈다.
북한은 이날 평균 신장이 10cm이상 큰 미국 팀을 맞아 잘 짜여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전선수가 기민하게 움직이는 「조르기 전술」 (압박 전술)로 거대 「골리앗」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의 강력한 보디체크 (몸 싸움)에 북한은 골게터 FW안별이 2피리어드에서 이빨을 크게 다쳐 퇴장하는 등 악전 고투했으나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활기찬 플레이를 펼쳤다.
1차 전에서 소련에 18-0으로 대패했던 북한은 스틱웍이나 스케이팅 기술에서 미국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고 지구력에서는 오히려 미국을 능가했다.
아이스하키는 북한이 동계 종목 중 가장 투자를 아끼지 않는 종목.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 선수들이 해외 전지 훈련은 고사하고 국제 대회 출전도 제대로 못하는 「찬밥 신세」인 반면 아이스하키는 대부분의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비시즌에는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훈련을 벌이는 등 특혜를 받고 있음이 밝혀졌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 크게 부러워하지요』 박덕성 코치의 말이다.
북한이 아이스하키를 아끼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김유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이 과거 체코 유학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하며 몹시 심취, 현재의 박 코치를 소련에 연수시켜 기술을 배워오도록 배려했다는 것.
또한 팀이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아 국내 리그가 활성화, 관중들 사이에서의 인기도 상당히 높다는게 강준일 북한 아이스하키협회 직원의 설명이다.
현재 북한은 대졸자들이 대부분 망라된 아마추어 팀 (성인 실업팀) 만도 25개가 있으며 대학팀 12개, 고교팀 20개가 있어 이들이 겨울철이면 5∼6개 대회에서 치열한 우승 다툼을 벌인다는게 강씨의 말이다.
경기는 평양 시내에 있는 2개의 실내 링크에서 주로 하는데 내년까지는 95 삼지연 동계 아시아 대회에 대비할 겸 평양에 실내링크 1개와 삼지연 실외 링크를 네덜란드 히렌빈 링크처럼 실내 링크로 개조할 예정이라는 것.
북한의 선수층이 두텁다는 것은 이번 유니버시아드팀에 당연히 들어와도 충분할 월드 주니어 팀 (지난해 C풀 선수권 우승) 멤버 중 1명만이 포함됐을 뿐 아니라 오는 4월부터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C풀 세계 선수권 대회에는 현 유니버시아드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교체돼 출전한다는 데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실업팀 부재로 인한 국내 경기 침체와 협회의 오랜 폐쇄적 운영 등으로 인해 미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암담한 실정이다.
한편 북한이 미국을 꺾는 순간 쓰기사무 링크에 모인 5백여명의 재일 동포들은 모두 껑충껑충 뛰면서 코리아를 연호, 한민족의 승리를 만끽했다.
민단과 조총련계 동포들은 본부석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북한의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렸으며 수세에 몰릴 때는 「힘내라!」고 합창, 진한 민족애를 과시했다.
조충련계 동포들은 북한팀의 경기가 끝난 후 한국-소련전의 경기가 벌어진 저녁 9시 이후까지 계속 남아 한국팀을 목이 쉬도록 열렬히 응원했다. <신동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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