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눈 치운 '시민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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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낮 신촌 이대 앞 상가 주변 인도에는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최승식 기자

일요일인 17일 오전 8시 서울 성북동 홍익대사대부고 인근 주택가.

전날 밤부터 12.8㎝나 눈이 내려 길 곳곳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발목이 푹 빠지는 곳도 있다. 비탈진 골목길이 100m가량 이어져 눈이 내리기만 하면 행인들이 엉덩방아를 찧는 곳이다. 그런데 진기욱(30)씨 등 주민 네 명이 나와 각자 자기 집 대문 앞 눈을 쓸어 길 가운데로 모아 길을 틔웠다. 진씨는 자신의 집 앞은 물론 골목 일대 20여m를 정리한 다음에야 빗자루를 놓았다. 그는 "올 2월 눈이 얼어붙은 골목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날 뻔했다"며 "눈 치우기 조례가 생겼다는 얘길 듣고 내 집 앞 눈을 직접 치우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7월 제정된 서울시의 '눈 치우기 조례'가 이번 폭설에 제 힘을 발휘했다. 휴일이어서 교통량이 적은 데다 날씨가 춥지 않아 눈이 빨리 녹은 것도 도움이 됐지만 주민들의 눈 치우기 덕분에 시민.차량이 미끄러지는 등의 불편이 크게 줄었다. 조례는 이면도로나 보행자 전용도로 등 골목길의 주거용 건물에 사는 시민은 대문 앞 1m 구간을, 비주거용 건물의 경우는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m 안의 눈을 스스로 치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루 동안 내린 눈의 양이 10㎝를 넘는 경우에는 눈이 그친 뒤 24시간 안에 제설 작업을 끝내면 된다.

이날 서울 광화문.종로 등 주요 도로 근처는 물론 주택가 골목길도 오전에 말끔히 정리된 모습이었다. 종로 1가에서 화장품점을 운영하는 이복례(46.여)씨는 "건물 관리인이나 상점 주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 눈을 치워 이전에 눈이 올 때와 비교된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권승원 팀장은 "눈을 치우지 않아도 처벌 조항이 없어 조례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예상보다 많은 주민이 눈 치우기에 동참해 쉽게 제설작업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로구 원남동, 강북구 삼양동 등의 일부 이면도로와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상점 앞은 눈을 제때 치우지 않아 곳곳이 진탕 길로 변하면서 시민들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서대문구 북아현동 등 비탈길이 많은 주택가에서는 쌓인 눈이 얼어붙었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조례가 생기기 전보다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눈을 치우고 있으나 앞으로 더 많이 참여하는 시민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16일 오후부터 제설차 934대를 동원해 염화칼슘 16만8000부대(25㎏)와 소금 1만5000부대(25㎏)를 뿌리며 비상근무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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