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법 처리 막판 국회법 암초에 한나라 '망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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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이재오 사무총장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법사위를 통과한 노무현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법 처리가 다음주로 연기된 것과 관련, 최병렬대표를 찾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서울=연합]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오는 10일로 연기됐다.

열린우리당의 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한 한나라당의 전략 부재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망신당했고, 특검법안 처리에 공조한 민주당도 머쓱해졌다.

7일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까지만 해도 일사천리였다. 열린우리당 천정배·최용규 의원 등은 반대토론에서 “특검은 검찰 수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물타기”라고 저항했다. 이들이 조문마다 이의를 제기해 여섯차례나 찬반투표를 해야 했다.

하지만 특검법안의 최종 표결 결과 12명 중 9명이 찬성했다. 민주당 조순형·함승희·양승부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공조해 개탄스럽다”며 “국민이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측근비리 특검법안의 본회의 통과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후 본회의 직전에 열린우리당 측이 국회법 규정을 들어 제동을 걸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특검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려면 최소한 하루가 지나야 한다는 국회법 93조2항을 제시했다. 처리를 강행할 경우 절차 위반으로 법률안 무효소송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나라당은 논란 끝에 법안 처리 시기를 미뤄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총무 사퇴를 주장하는 등 자중지란이 일었다. 이재오 사무총장은 홍사덕 총무에게 “3당이 힘을 모았으면 밀어붙여야 할 것 아니냐”고 삿대질을 했다. 洪총무는 “아까 다 (사정)얘기를 했잖아”라며 맞고함쳤지만 강경파 의원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洪총무는 투표 중단을 지시하고 정의화 수석부총무를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보내 정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회의장 밖 복도에서 안상수·박승국 의원 등은 “총무단 사퇴하라” “당을 이렇게 망신시켜도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고 鄭수석부총무는 “그래 사퇴하겠다”고 응수하는 등 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방호 의원은 “저게 총무냐, 사쿠라지”라는 막말을 했다.

홍사덕 총무는 “김근태 대표가 특검법안에는 반대하지만 시기적으로 오늘 처리한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믿었는데…”라며 허탈해 했다. 최병렬 대표는 “총무가 어제(6일) 열린우리당이랑 다 합의가 됐다 해서 그런 줄 알았다”면서 난감해 했다. 대선자금 정국에서 대표-총무 간 불협화음 등으로 우왕좌왕해온 한나라당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하루였다.

◇국회법 93조2항은=정기국회 중에는 예산 부수법안만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으며, 긴급하고 불가피한 경우 본회의 의결을 해야만 다른 법률안 처리가 가능하다. 또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은 1일을 경과해야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올 2월에 개정된 국회법에 새로 포함됐다. 의원들이 찬반투표 전에 법안을 숙지할 시간을 주기 위해 필요하다며 국회 개혁 차원에서 朴의장이 개정을 주도했다.

박승희.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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