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와 권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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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포클랜드전쟁이 일어났을때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전쟁보도 특별 프로그램에서 『영국측 주장은…』『아르헨티나측 주장은…』이라는 서두를 달아 쌍방 발표를 같은 비중으로 보도했다.
이에 역정이 난 대처 영국총리는 『도대체 BBC는 국적이 어디냐』고 항의하면서 BBC가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데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그리고 BBC를 청취하는 수많은 세계 각국 청취자들은 BBC편을 들었다.
이것은 BBC의 공정성 수호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BBC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인 경영위원회가 방송 전반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 위원은 3개의 지역대표와 재정문제 전문가,노동조합출신자,교육자등 각계 대표로 국왕이 추밀원의 자문을 받아 임명한다.
일본에서 방송은 원칙적으로 우정성 관할이다. 그러나 공영방송 NHK의 경우 예산과 사업계획,자금계획은 국회의 승인을 받고 회계감사원으로부터는 회계감사를 받는다. 방송의 편성·제작등 실무에 관한 모든 책임은 경영위원회가 갖는다.
일본의 방송법은 NHK경영위원회 위원은 「공공의 복지에 관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고,넓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자」중에서 선임하되 「교육·문화·과학·산업,기타 각 분야가 공평하게 대표돼야 한다」고 그 자격요건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각국의 방송이 정부관할이라는 형식은 갖추되 앞서 예시한 것들과 유사한 의결기구에 의해 규제·감시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구의 구성원은 국민 각계층의 대표성을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하고 있다.
알려진대로 우리도 이들과 비슷한 이름을 갖고 비슷한 기능을 하도록 돼 있는 방송위원회라는게 있다. 그러나 그 위원은 「방송전문가와 학식·경험·덕망이 있는 자」라는 애매 모호한 자격요건으로 방송법에 규정돼 있다.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방송위의 운영쇄신과 권위회복이 촉구됐다고 한다. 방송전파란 국민의 재산인만큼 이에 대한 규제·감시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신뢰에서부터 방송위의 권위는 출발할 수 있다. 3부가 적당히 안배하는 인선으로는 대표성도,전문성도 기하기 어렵다. 하물며 어찌 권위를 기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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