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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등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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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박찬욱과 홍상수.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감독이다. 성이든 폭력이든 강도 높은 표현으로 18세 관람가(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로 받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18세'란 이들 작가 세계의 상징 같은 것이다.

이들이 18세 행렬을 잠시 멈췄다. 노골적인 섹스신으로 18세 전문인 홍상수 감독은 최초의 15세 등급 영화 '해변의 여인'을 내놨다. 개봉 중인 박찬욱표 로맨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12세 등급이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복수 3부작에서 줄곧 18세를 고수했던 그다. 등급 나이가 몇 살 내려간 것에 불과하지만 관심 가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입이라도 맞춘 듯 "내 딸에게 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똑같이 10대 외동딸을 두고 있는 두 감독은 딸에 대한 끔찍한 사랑으로 유명하다.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로 사회적 논쟁을 불사해 온 임상수 감독도 12세 등급에 가세했다. 내년 초 개봉하는 '오래된 정원'에서다. 1980년대 운동권 남자가 도피 중 불 같은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황석영 원작 소설을 12세로 완성한 데 대해 감독은 "모든 등급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답했다.

이들뿐 아니라 최근 충무로 영화들은 경쟁적으로 저연령 등급 받기를 선호하고 있다. 영화등급위원회의 심사 기준이 날로 관대해지는 데다 영화사들 입장에서도 표현 수위를 낮춰 낮은 등급으로 잠재 시장을 키우겠다는 계산이다. 12세 등급으로 1000만 신화를 일군 '괴물'이 주 계기다. 영화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오락으로 자리 잡으면서 '낮은 등급=흥행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는 '키덜트(kidult) 무비' 시장이 확실하게 열린 것이다.

다세대를 유인하는 능력은 상업감독의 으뜸 자질로도 꼽힌다. 역시 '괴물'이 모범 사례다. 초등생 관객에게는 괴수 영화로, 386 성인 관객에게는 정치비평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연령별로 소구점이 다른, 다양한 층위의 영화라는 게 '괴물'의 장점이고 봉준호 감독의 재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어른과 아이가 똑같은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문화적 취향이나 경험의 차이가 날로 좁혀지고 동질화된다고 할 수 있다. 성인들은 점차 유아적 문화 취향에 고착되고, 아이들은 날로 조숙해진다. 어른은 '어른애'가 되고, 아이들은 '애어른'이 되는 것이다. 유아적 대중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초상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