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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일」벌어진 졸업식(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무더기유급」사태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 세종대의 90학년도 졸업식이 28일 오전 10시 대학구내 대양홀에서 열렸다.
졸업식 시작을 알리는 장내방송이 있은 뒤에도 몇몇 학부형들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둘러서서 웅성거렸다. 학생들이 올해도 식장점거농성을 벌이리라는 소문때문이었다.
그런 학생들의 행동이 옳거니,그르거니 학부모들끼리도 의견이 갈려 수군대고 있었다.
이중화총장(57)을 비롯한 단상의 교수들도 잔뜩 긴장된 모습이었다.
87학년도 졸업식부터 내리 세차례나 졸업식다운 졸업식 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했기에 그 소문은 소문 이상의 무게로 홀안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이라고나 할까. 졸업생을 위한 기도,학위증서 수여,상장수여가 진행되는 20여분동안 「아무일 없이」진행됐다.
긴장감이 다소 풀린 듯 억지로 아껴둔 축하의 말과 악수를 주고받는 모습이 하나 둘 늘어나는 순간 단상앞 왼쪽에 앉아있던 20여명의 학생들이 벌떡 일어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비리재단 물러가라.』
『어용총장 퇴진하라.』
막 축사를 읽으려던 이총장은 잠시 멈칫거리다 낭독을 계속해 갔다.
그러나 학생들의 구호도 더욱 거세졌다.
축사와 구호가 범벅된 홀안은 이미 시장바닥. 그런데도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재작년보다는 났구먼.』
누군가 심한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졌던 88학년도 졸업식에 비교해 야유를 내뱉었다.
끝내 졸입식은 더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학부모님들께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워낙….』 학교측 이규채 기획처장(56)의 말.
『세종대의 민주화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학생측 김태일 총학생회장(27·2부경제학과 4년)의 주장.
어느쪽의 말과 논리도 가슴에 와닿지 않고 공허하기만 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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