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행랑(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쟁의 승리를 미리 알 수 있는 다섯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전쟁을 해야할 때와 해서는 안될 때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무기를 얼마나 많이 쌓아 두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력보다 주변의 정세다. 더구나 오늘처럼 발딱한 세상에 주위의 눈총을 받는 전쟁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둘째는 많은 병력과 적은 병력의 사용방법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병력이란 꼭 군대의 머리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무기,작전,전략을 모두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가령 아군이 적보다 10배 강하면 적을 포위하고,5배 강하면 정면공격하며,2배인 경우는 적을 분산시키고,비슷하면 죽을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열세일 때는 주저없이 도망가야 한다.
셋째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승리할 수 있다. 장군과 병사의 관계만이 아니다. 어떤 전쟁이든 국민의 호응과 단결과 협조가 없으면 이길 수 없다.
넷째는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가 적이 해이한 틈을 타서 허를 찌르는 경우다.
다섯째는 유능한 장군을 배치하고,윗사람은 전쟁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쟁때 정치인들의 참견이 너무 많았다. 학생들까지 반전데모로 힘을 뺐다.
손자병법은 아득한 2천5백년전 창칼을 들고 전쟁을 하던 시절의 얘기다. 하지만 컴퓨터와 미사일의 전쟁을 치르는 지금 읽어 보아도 빈말이 아니다.
지금 걸프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사담 후세인이 손자병법을 한 페이지만 읽어보았어도 그처럼 섣불리 탱크를 몰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첨단무기가 어쩌고 하지만 그보다 지난 6개월동안 뉴욕에서 벌여온 외교전에서 이미 상당한 승리를 거둔 셈이다.
우선 이라크를 국제사회에서 몰아 붙이는 유엔결의안을 자그마치 12개나 통과시키고,여기에 근거해 유럽의 열강들이 참가한 33개국의 다국적군을 묶어 놓은 것만으로도 전쟁은 시작도 하기전에 승리를 점칠 수 있게 했다.
후세인은 다 늦게 쿠웨이트에서 철군명령을 내렸다지만 그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36계 줄행랑」의 꼴을 면할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