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하나로 '명퇴 돈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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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명예퇴직에는 돈이 많이 들텐데, 그런 여력이 있다면 우리에게 준 12개월짜리 어음을 앞당겨 갚아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로통신이 지난 4일부터 임원 45명 전원을 대상으로 명퇴 신청을 받고, 퇴직금으로 기본급의 13~18개월치를 준다는 소식에 한 통신장비 업체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하나로가 빨리 정상화돼야 돈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 지난 주총 때 앞장서 소액주주들의 찬성 위임장을 받아줬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나로통신의 임원 명퇴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 회사 임원들은 지난달 28일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까지 이르게 했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전원 사표를 낸다고 했었다. 한때 스스로도 "법정관리될 위험이 있다"던 기업이 뉴브리지 컨소시엄에서 1조3천억원 외자를 유치했다고 벌써 돈잔치를 벌이느냐는 지적이다.

하나로통신도 눈치가 보였는지, 명퇴에 관한 내용을 발표할 때 '기본급'의 13~18개월치를 더 준다고 했다. 통상 기본급이 전체 연봉의 50~60%여서 퇴직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내비친 것. 하지만 하나로통신 임원은 연봉의 90~95%가 기본급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로 측은 "부사장급의 경우는 퇴직금이 수억원"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기업에 비해 결코 많지 않은 퇴직금"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임원은 임기 중이라도 이사회가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고, 또 퇴직금을 꼭 줘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데 수억원을 주며 명예퇴직을 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하나로통신의 빚은 현재 2조원이 넘는다. 외자가 들어와 이 중 일부를 갚더라도 당분간 1조원을 훨씬 넘는 부채를 걸머져야 할 상황이다. 퇴직금이 다른 기업 수준이라도 따가운 눈총이 쏟아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책임지고 나가는'임원들에게 명퇴금을 얹어주는 것을 회사 측의 '따뜻한' 배려로만 볼 수 있을까.

권혁주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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