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로마를 알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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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난 자신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으면서 아름다운 천을 만들어 갔던 전설 속의 여인 '쓰((津)'와 같다. 다시 날개가 돋아날 때까지 푹 쉬고 싶다."

시리즈물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69.사진)가 15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14일 뱉은 말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이 책에 쏟아 부었다는 얘기다. 그는 자식을 낳듯 15년 동안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매년 한 권씩 뽑아냈다. 1992년 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에서 시작해 15일부터 일본에서 시판되는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14권까지 일본에서만 540만 부가 팔렸다. 시오노는 열다섯 권을 쓰는 내내 이탈리아에 머물며 1년의 절반은 자료 수집 및 정독, 나머지 절반은 집필에 매달려 왔다.

◆ "로마인 알고 싶어 썼다"=시오노는 제15권 후기에서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는 나 스스로 로마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라며 "집필을 마친 지금은 감히 '알겠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왜 로마 역사를, 그것도 15권이나 썼는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소박한 질문에서 비롯됐다. 그동안 로마사라고 하면 일반적인 상식은 로마 제국의 '쇠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쇠퇴했다면 그 전에는 번창했다는 말인데, 왜 그 번영기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누구도 답을 해주지 못해 내가 그 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로마사의 바이블로 통하는 영국인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1737~94)의 '로마 제국 쇠망사'(전 6권)가 로마 전성기(96~180)에서 동로마제국 멸망에 이르는 시기만을 다뤘던 데 비해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 건국에서 멸망까지를 두루 훑었다.

시오노는 "한 나라의 역사는 한 사람의 생애와 같다. 철저하게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탄생부터 시작해 죽을 때까지를 꿰어야 하듯 (역사도)마찬가지다"며 "15권까지 쓰지 않았다면 로마의 역사를 쓸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로마 제국이 장수할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로마인은 인간이라고 하는 복잡한 존재를 제대로 파악한 뒤 (인간에 맞는)적절한 제도를 만들어 냈고, 그 다음에도 '보수 및 유지'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로마사를 논하는 데 '일본인 시오노'는 한계가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14일자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역사가가 로마사를 쓰면 아무래도 공화제를 높이 평가하고 제정(帝政)을 낮게 평가할 것이지만 전혀 다른 문명권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오히려 '쿨(cool:멋지고 신선함)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최종편인 제15권에서 그는 로마 제국의 멸망과 그 이후에 나타난 현상들을 열거했다. 특히 로마 제국의 멸망을 다룬 기존 역사서나 연구서와 차별화하기 위해 '왜'보다는 '어떻게 멸망했나'에 중점을 뒀다. 시오노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공화국, 고대 로마 제국 등 '성자필쇠(盛者必衰.번창한 이는 결국 쇠퇴하고 만다)가 역사의 이치라면 후세의 우리도 옷깃을 고치고 순수히 보내주는 게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끝을 맺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 시오노 나나미=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63년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을 졸업했다. 고교 시절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도쿄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뒤 가쿠슈인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양철학을 전공하면서 학생운동에 가담했지만 마키아벨리를 알게 되면서 회의를 느껴 그만뒀으며, 졸업 뒤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탈리아에서 30년 넘게 로마사를 연구한 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70년 마이니치 출판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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