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후세인 항복협상 거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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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은 이라크 공격(3월 20일)을 앞두고 사담 후세인이 막후 채널을 통해 전해온 '항복협상'을 거부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타임스에 따르면 후세인은 지난 3월 초 미국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마드 하게(47)'라는 이름의 레바논계 미국인 사업가를 통해 런던에서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에게 '미국이 공격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일련의 막후 거래를 제안했다.

후세인의 제안 중에는 ▶전면적인 대량살상무기 사찰 허용▶테러와의 전쟁 협력▶미국의 중동평화계획 전폭적 지지▶석유 제공▶알카에다 조직원 인도▶2년 내 이라크 선거 실시 등의 파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2월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후세인은 이라크 정보국의 해외공작책임자인 하산 알 오베이디를 레바논 베이루트로 보내 이마드 하게를 만나게 했다.

오베이디는 이 자리에서 미국이 왜 이란이 아닌 이라크를 노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 후 "우리는 미국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대량살상무기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요원 2천명을 입국시킬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측 요청을 받은 이마드 하게는 같은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친분이 있던 국방부의 중동문제 분석관인 마이클 말루프를 통해 국방부의 실세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과 접촉했다.

이라크는 막후 채널을 통해 필사적으로 협상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마드 하게는 "오베이디는 이것이 전쟁을 피하기 위한 최후의 시도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으며, 구걸에 가까운 자세로 미국과의 막후 접촉에 매달렸다"고 술회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마드 하게는 런던 중심가인 나이트 브리지 근처에서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을 두 시간가량 만났다. 이마드 하게는 이 자리에서 이라크 측의 항복 조건을 설명한 후 후속 협상을 제안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리처드 펄 위원은 중앙정보국(CIA)과 접촉했다.

그러나 CIA는 이라크와의 후속 접촉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리처드 펄은 "후세인이 러시아.프랑스 같은 공식 채널을 제쳐놓고 이마드 하게 같은 개인적인 채널을 통해 그렇게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임스의 취재에 따르면 CIA는 이라크 침공 직전에도 로마와 모로코 등지에서 이라크 정보당국과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보기관 간의 접촉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결실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이라크와의 후속 협상을 거부했고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마드 하게는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만일 그때 후속 협상이 이뤄졌더라면 사태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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