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만 가중시킨 대입개선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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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의 교육자문기구인 교육정책자문회의가 교육개혁 전반에 걸친 기본구상을 대통령에 건의했다.
이중 특히 현안으로 제기된 대입제도개선안은 제도의 다양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교육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으로 그칠 우려가 크다.
자문회의의 건의에 따르면 현행 고교내신성적 30%의 반영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적성시험과 대학별 고사는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4개의 대입유형이 생겨난다. 고교내신만으로 학생선발을 하는 제1유형,고교내신+적성시험이 제2유형,고교내신+대학별 고사가 제3유형,고교내신+적성시험+대학별 고사가 제4유형이 된다.
학생선발 방식이 대학에 따라 네가지 방식으로 갈라진다면 입시생과 학부모가 받는 현실적 고충과 혼란은 어떠하겠는가. 고교교육은 네가지 유형의 입시에 따른 네개의 그룹으로 편성되어 각기 다른 교육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어떤 학과를 선택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택할 것인가가 가장 중대한 입시준비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고교교육이 혼란에 빠지고 입시생과 학부모는 더더욱 갈피를 못잡아 헤매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건의안은 또 다른 혼란을 보태고 있다. 지원기회의 다양화를 기한다는 이유로 대학간의 복수지원을 허용하고 대입시험시기도 자율화한다는 것이다. 현행의 전후기제도를 없애고 대학임의로 시험일자를 정해서 발표함으로써 이 대학도 지원하고 저 대학도 지원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마다 시험방식이 달라지고 대학마다 시험일자가 달라 입시생과 학부모는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게 됨은 불을 보듯 훤하다.
대입제도가 현행제도에서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에서 출발한 개선안이 이토록 당장의 현실을 무시하고 머릿속의 이상에만 치우쳐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를 더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어째서 그토록 많은 개선안이 여과됨이 없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가에 있다.
대학총장들의 모임인 대학교육협의회가 89년에 적성시험제라는 낯선 제도의 도입을 건의한 이래 교육부의 자문기구인 중교심이 고교내신+적성검사+대학별 고사를 제기했고 여기에 또 자문회의가 변형된 형태의 대입개선안을 건의한 것이다.
민주사회의 제도개선과정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함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세개의 개선안이 각기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쏟아짐으로써 혼란과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인 것이다.
또 대통령의 자문기구,교육장관의 자문기구,대학총장의 모임에는 세개의 위원회가 개선안 자체의 문제를 가리기에 앞서 누구에게 자문하고 건의했느냐는 힘의 서열에 따라 결정된다면 그것은 더더욱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교육부는 3개의 개선안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전문가와 여론의 뜻을 묻는 공청회를 거쳐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갖춘 개선안을 신중하고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확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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