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단축과 편의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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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연일 계속되는 걸프전쟁 보도는 『TV로 생중계 된 인류최초의 전쟁』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우리들 안방을 전쟁터로 바꾸어가고 있다. 「세계의 눈」이라고 할 수 있을 TV뉴스의 거인 CNN을 통해 오늘밤도 우리들은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일진일퇴하는 전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TV앞에 붙들려 있는 세계인들은 「CNN신드롬」이라고 하는 새로운 증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전쟁의 공포라고 하는 노이로제와 함께 눈의 피로·불면증세·일상업무의 해이·대화의 부족·두통 따위가 그것이다.
또 국내 TV보도는 우리국가 이익에 대한 냉철한 안목이나 정밀한 분석 없이 서방 언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편향된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첨단병기의 시험무대인 걸프전쟁은 스턴트 쇼처럼 다루어져 사건의 본질이 외면되기도 한다.
오늘날 전쟁은 TV보도의 전쟁이 돼가고 있다. 한마디로 뉴스는 드라마이고 드라마의 핵심은 위기와 갈등이기 때문이다.
이번 걸프전쟁은 CNN이라고 하는 24시간 뉴스전용케이블방송을 세계 최대 최고의 TV뉴스네트워크로 만들었고 불타는 적진에서 연일 특종을 터뜨리는 피터 아네트기자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시청률 0.7%에 지나지 않던 CNN뉴스는 11%로 뛰어올랐고 프라임타임 30초 광고료는 3천5백달러에서 2만달러로 치솟았다.
역사적으로 방송과 전쟁은 연관을 맺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 녹음기가 처음 취재에 쓰이면서 포성이 울리는 아비규환의 전장이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되기 시작했고, 전황에 관심이 쓸린 국민들의 정보욕구에 부응해 시간마다 뉴스를 내는 이른바 정시뉴스가 제도화되었다.
『여기는 런던, 새벽 3시반입니다. 오늘도 평소처럼 9시에 공습경보가 있은 뒤로 간헐적인 폭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격이 한차례 요란하게 지나가고 나면 약20분간 조용한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때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엔 보름달이 떠있고 더러운 회색건물들이 하얗게 보입니다.
방공호 속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조용해진 틈을 이용해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어서『안녕히 주무십시오. 행운을 빕니다.』이렇게 끝멘트를 하던 전설적인 종군기자 에드워드 머로는 2차 세계대전을 런던의 지붕 위에서 보도해 한층 유명하다.
전쟁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방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세계 제2차대전이 발발하자 방송관련 산업은 군수산업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첫째, 사상자 소식 등을 전하는 라디오방송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증대되었고 둘째, 방송이 심리전에 이용됨으로써 선전술 등 설득커뮤니케이션이 발전했으며 셋째, 많은 기업들이 전후에 대비하여 기업PR광고를 많이 냄으로써 방송사가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TV는 전쟁이 장기화하자 에너지 절약시책 때문에 방송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눈과 귀가 걸프전에 쓸리고 있는 중대한 시점에 TV방송시간을 늘리기는커녕 하루 2시간씩이나 줄인다는 것은 관료들의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이제 가시적인 효과만을 노리는 행정의 편의주의는 단호히 배격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한국외국어대 김우용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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