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여당서 솔솔 나오는 '야당론' 실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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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개혁당' '꼬마 우리당' '영남 신당' '경남당'….

열린우리당 내부엔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이들이 있다. 주로 신당파 사람들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親盧)파가 2007년 대선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담긴 비아냥이다. 결국 야당 될 각오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른바 '야당론'이다. 노 대통령이 '역발상의 정치인'이라는 점도 야당론의 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친노파는 "매터도(흑색선전)"라며 불쾌해하고 있다. 정계개편 방향, 전당대회 시기와 성격을 놓고 사사건건 부닥치는 양측의 충돌 이면엔 이렇듯 상대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깔려 있다.

◆ "친노, 야당 준비하는 것 아니냐"=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친노 당원들이 드러내놓고 '명분과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내년 대선에서 야당을 하면 어떠냐'고 얘기한다"며 "노 대통령의 대연정, 여.야.정 정치협상 제안에 야당 할 각오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민병두 의원도 "노 대통령의 발언을 영남 야당, 부산 신당을 하겠다는 쪽으로 듣는 의원들이 있다"고 전했다. 임종석 의원은 "노 대통령이 (현행 양당 구도가 아닌) 다당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캐나다 멀루니 전 총리를 언급하며 "그는 당을 몰락시켰지만 캐나다 재정과 경제를 구했다"고 하고 ▶신당파인 염동연 의원에게 "나는 민주당과의 통합에 절대 동의할 수도 없고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죽읍시다"고 한 발언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친노 직계의 리더 격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언행도 관심을 끌고 있다. "10년 집권했으면 많이 한 것이다. 야당 하면 어떠냐"고 말해 왔던 그는 요즘 "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선 국면에 직접 참여하거나 개입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대선 승리만을 위한 정치 연합은 대선에서 질 경우 아예 사라질 수 있다"며 "결국 '지역주의 타파' '개혁'의 노선을 안고 있으면 대선에서 지더라도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노 대통령, 정권 재창출 의지 강하다"='야당론'을 부정하는 그룹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노 대통령 자신이 정권 재창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노 대통령은 최근 당내 친노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당에선 제가 정권 재창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봅니까"라고 넌지시 떠봤다고 한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답변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권 재창출 의지가 강하고 자신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이광재 의원도 "(노 대통령이) 야당 각오를 했다는 주장은 매터도"라고 펄쩍 뛰었다. 그리곤 "대통령은 (원칙과 명분 등) 큰 줄기를 따라가야 대마(大馬) 승리가 온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역대 선거에서 우리는 51%, 한나라당은 49% 구도였고, 다음 대선도 그럴 것"이라고 주장했다.

◆ "노 대통령 구상이 궁금하다"=한나라당은 경계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전략통인 유승민 의원은 "(노 대통령이) 경남당이든 개혁당이든 지분을 유지해 정치생명을 이을 것이란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대선에 지고 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가까운 이재오 최고위원도 "국민이 친노 잔여 세력을 (대선 패배 이후) 원내 교섭단체로 만들어 주겠느냐"라며 "결국 지금의 여권 내 갈등을 최고조로 만들었다가 막판 대타협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야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깜깜하겠지만 노 대통령과 DJ(김대중 대통령) 머릿속엔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론'이 노 대통령의 대선전략이라는 의심인 것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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