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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라이프] '커피 랭귀지' 알아야 마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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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1968년 펄시스터스가 불러 히트한 노래 '커피 한잔'의 첫 대목이다. 당시 하루에도 몇번씩 이 노래를 틀어대던 전국의 다방에선 "아가씨, 여기 코-피 한잔"이 공식 주문 용어처럼 사용되곤 했다. 커피 한잔에 70~80원하던 때다. 35년이 지난 지금 테이크 아웃 커피 전문점에서 "코-피 한 잔"을 찾았다간 외계인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 '모닝커피' 달걀 노른자 동동 … 그때 그 추억 향기로 남았는데

테이블 한쪽에 놓인 팔각 성냥, 1백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운세풀이 종이가 나오는 재떨이, 들릴 듯 말 듯 흐르는 경음악과 애절한 트로트가요,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흔들며 자리를 오가는 '레지'아가씨…. 중년 이상의 세대가 아련하게 기억하는 옛날 다방의 풍경이다.

이땅에선 고종황제가 처음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이후 1927년 영화 감독인 이경손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러시아 공사관 앞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다. 소설가 이상(李箱). 그도 33년 서울 명륜동에서 '제비' 다방을 열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방은 대중화 시대를 맞게 된다. 분말형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한 덕분이다. 당시 다방들은 커피를 포트에 담아 한약 끓이듯 계속 불을 켜뒀다. 그 바람에 향과 맛이 모두 달아난, 쓴 커피를 마셔야 했다. 그래서 설탕과 크림을 잔뜩 넣어 마셨다. 유리창 너머로 낮게 깔리는 DJ의 목소리와 팝송으로 상징되는 음악다방이 선보인 것은 60년대 초반. 그렇게 다방은 70, 80년대 초까지도 호황기를 이어갔다. 한국휴게실업중앙회(옛 대한다방업중앙회)에 따르면 80년대 초반엔 전국의 다방 수가 8만여개를 헤아렸다.

'다방 르네상스'시절에 등장한 간판 메뉴는 다름아닌 모닝커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 위에 참기름을 한두방울 두른, 달걀 노른자가 둥둥 떠있는 커피다. 모닝커피는 출근길에 쫓기는 샐러리맨들의 아침 요깃거리로도 인기를 모았다. 다방 커피를 만드는 비율도 나름대로 정해져 있었다. 커피와 크림.설탕을 각각 두 스푼씩 넣는 것이다.

다방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이다. 한국휴게실업중앙회 김수복 기획국장은 "올림픽 이후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원두커피를 주메뉴로 한 커피전문점들에 바통을 넘겨줬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다방은 1만5천여개. 몇몇 '티켓다방'들이 다방의 이미지를 흐려놓으며 쇠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배달과 서비스를 전담하는 여자 종업원 구하기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김국장은 "서울에서 여종업원을 구하려면 한달에 1백20만~1백30만원은 줘야 한다. 인건비는 지방이 더 비싸 1백80만원을 줘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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