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 설움 매트에 떨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고된 노동일을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마셔도 그의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마다 소주잔에 대고 이렇게 얘기 했다.

"이건 아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건데."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20㎏급에서 이란의 거구 샤르바이아니 게스마티아자를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건 김광석(29.수원시청.사진) 선수. 그는 풍운아 레슬러다. 부산 경성대에 다닐 때만 해도 촉망받는 선수였다. 2002년 마산시청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됐다.

박명석 대표팀 그레코로만형 감독은 "빠르고 키도 크고 힘도 좋아 뭔가 일을 낼 것으로 기대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김 선수는 1년여 만에 팀을 박차고 나갔다. 힘든 운동이 싫었고, 지도자들과 뜻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갔다. 울산시청 선수로 등록은 해놨지만 더이상 선수가 아니었다.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기 위한 소주 값도 안됐다고 한다. 그의 식사량과 주량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삼겹살과 소주값을 위해 그는 막노동을 시작했다. 울산 공단에서 잡역부로 2년 동안 일하면서 밤이면 밤마다 엄청난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레슬링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받아주려는 팀이 당장 나타나지 않았다. 방탕한 생활로 96㎏급에서 뛰던 그의 몸무게가 130㎏까지 불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1월 수원시청 레슬링팀이 창단되면서 기회를 잡았다. 연봉 1500만 원의 C급 선수 대우였다.

"매트에서 죽기로 작정하고 1년여 동안 정말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김 선수는 "고향 식당에서 일하며 외아들 뒷바라지를 해오신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효도한 것같아 너무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도하=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