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정지된지 7일 만에 살아난 '기적의 사나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0일 고대안산병원 응급실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경기도 안산지역 도금공장에서 일하는 김모(42)씨가 응급실을 찾은 시각은 오전 11시30분께. 도금반에서 3분여 작업을 도와주던 그는 집에 일이 있어 작업실을 나왔다. 그리고 1시간 30분 만에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같이 작업을 하던 동료가 쓰러졌으니 서둘러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안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호흡을 헐떡이며 쓰러졌고, 곧 심장이 멎었다. 그가 마신 질산가스와 불화수소 등 유독가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폐기능을 정지시킨 것. 질산은 우리 몸에 들어가 산화질소로 바뀌면서 천천히 폐부종을 일으켜 심장을 멎게 한다. 유독가스에 노출한 뒤 쓰러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이 같은 물질의 특성 때문.

이때부터 안산병원 응급실 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환자는 심장이 정지된 채 의식이 없었고, 혈압은 잡히질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달았지만 유독가스로 폐 손상이 심각해 전혀 무용지물이었다. 몸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니 곧 사망을 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고대 안산병원 흉부외과 신재승 교수

이때 응급실 팀은 인공호흡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혈액내 산소포화도가 올라가지 않자 흉부외과 신재승 교수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했다. 응급실로 달려온 신 교수는 30분가량 심폐소생술을 한 뒤 대퇴정맥(넓적다리 정맥)으로 관을 집어넣어 우심방에서 혈액을 빼냈다. 그리고 인공심폐기(체외순환 생명구조 장치=ECLS)를 작동시켜 환자의 피에 산소를 섞은 뒤 다시 대퇴동맥으로 피를 뿜어넣었다.

인공심폐기는 이름 그대로 환자의 폐기능을 대신해주는 응급 의료장비. 심장기능이 멎은 환자의 혈액을 뽑아 산소를 흡착한 뒤 다시 넣어주는 장치다. 신장병 환자가 혈액을 거르기 위해 시술받는 혈액투석기와 같은 개념.

환자는 이후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었다.

시술 7일째, 환자는 의료진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고 무의식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폐기능 역시 정상화 가능성을 보였다. 의식회복 2일 만에 인공폐를 제거하고 자가호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공심폐기를 이용해 심장이 정지된 환자가 7일 만에 소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신 교수는 "인공폐로 몸에 산소를 7일간 공급해 의식이 회복된 경우는 이번이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환자가 다행히 병원에 와서 쓰러졌고, 폐가 손상되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다"고 말했다. 인공폐는 현재 권역별 응급센터나 일부 주요 대학병원에 설치돼 있다.

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