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그림|턱없이 싼 값에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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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최근 국내 유명화가들의 가짜그림을 무더기로 만들어 팔아온 2개 조직이 검찰에 검거됨으로써 미술계의 오랜 고질인 가짜그림이 또다시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들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 인기있는 옛 화가들의 고서화는 물론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오지호 남관 등 작고한 현대화가들의 작품을 위조했다. 더욱이 천경자·임직순씨 등 생존작가의 작품까지도 버젓이 가짜를 만들었다.
가짜그림 문제는 미술시장의 형성과 함께 시작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때그때 가장 인기있고 작품 값이 비싼 작가의 작품은 늘 가짜가 나돌게 마련이다.
이번에 검거된 이들이 제작한 현대작가들의 가짜그림들이 대부분 서양화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이 대상으로 삼은 서양화가들의 작품은 엽서 1장 크기에 수백만원 이상 1억원까지 호가하고 있으며 그나마 매물이 없어 구하기도 어렵다.
동양화 붐이 일었던 70년대에도 이번처럼 가짜 동양화가 극성을 부렸었다.
이처럼 가짜그림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르기 때문』이라는게 화랑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가짜그림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가짜그림 제작자들에 의해 양산되어 점조직의 중개상인(속칭 나카마)을 통해 화랑을 거치지 않고 수요자와 직접 거래된다.
이들은 대부분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턱없이 싼 값으로 유혹하게 마련이다.
즉 헐값에 값비싼 작품을 구입하려는 일부 안목없는 수요자들의 「횡재심리」가 있는 한 이들을 노리는 가짜그림은 근절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작품성보다는 인기작가의 이름을 선호하는 심리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화랑관계자들은 가짜그림에 속지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을만한 화랑에서 적당한 값을 주고 작품을 구입하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설령 가짜임이 밝혀지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구입한 작품의 진위에 의심이 갈 경우 감정기구의 감정을 받아볼 것을 권유한다.
국내미술품은 한국화랑협회와 한국고미술협회에 상설 운영되고 있는 감정위원회를 이용하면 된다.
한국화랑협회(733-3708)의 감정위원회는 한국화와 서양화(조각 포함) 두 부문에 7명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정위원들은 경험많은 화랑대표·미술평론가·원로-중진작가들이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감정위원회를 열어 신청작품의 진위를 가려준다. 작품과 함께 작품 컬러사진 3장을 갖추어 신청하면 된다. 감정료는 작고작가의 작품은 30만원, 생존작가는 15만원이다.
지난 82년 3월 설립된 이 감정위원회는 지난 8년간 2백50점을 감정, 이 가운데 35% 정도가 가짜임을 밝혀냈다.
한국고미술협회(732-2240) 감정위원회는 80년 설립돼 매주 화요일 1930년대 이전의 고미술품을 감정하고 있다.
이 감정위원회는 서화·도자기·전적·토기·금속 등 9개 분야로 나뉘어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감정신청에는 대상작품과 사진 2장, 감정료(7만5천원)가 필요하다.
고미술감정위원회의 감정신청 건수는 매년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동안 30% 정도가 가짜로 판명됐다.
그러나 이 두 감정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자문기구」일 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공인감정기구는 아니다.
그나마 해외미술품에 대해선 이같은 수준의 감정자문기구마저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올해 해외미술품 수입 자유화에 따라 가짜 해외미술품이 들어와 판을쳐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해외미술품의 경우 감정받을 길마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믿을만한 화랑에서 구입하거나 작품에 따라붙는 소장자들과의 거래리스트(족보)를 확인할 도리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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