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베트남에 '최혜국 대우' 승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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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가 8일(현지시간) 베트남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승인했다. PNTR이란 낮은 관세로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최혜국(MFN)대우와 같은 조치로 두 나라의 무역관계가 일반 교역국가 수준이 됐다는 의미다. 미 하원은 이날 베트남의 PNTR 승인안을 찬성 212표, 반대 182표로 통과시켰고 상원도 이를 승인했다. 이로써 10년간 전쟁을 치렀던 두 나라의 관계가 종전(終戰) 32년 만에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완전 정상화됐다.

◆ 실리외교 통한 시장 선점=부시 행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베트남의 PNTR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그동안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이었다. 올 들어 8월까지 미국이 베트남으로부터 수입한 금액은 55억 달러에 달한 반면 대(對)베트남 수출은 6억 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인 5만6000명이 죽은 베트남 전쟁의 감정적 후유증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미 의회가 논란 끝에 정상 무역관계를 승인한 것은 실리를 우선시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직접적인 계기는 베트남이 이번달 초 세계무역기구(WTO)의 15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

특히 베트남은 중국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으로 WTO에 가입해 베트남의 시장 개방 정도가 훨씬 크다. 미국.유럽 등 세계 각국 기업들은 벌써 베트남의 금융.통신.자동차.원자력발전 시장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과의 무역관계 회복을 미룰 경우 베트남에서 자칫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베트남 정부도 PNTR이 늦어질 경우 베트남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어 왔다.

◆ 반미 성향 국가 견제용 해석도=일각에서는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반미 성향 국가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을 견제할 전략적 파트너로 베트남을 키우고 북한.미얀마.이란 등 이른바 '불량 국가'를 자극하기 위해 베트남 껴안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달 APEC 연설을 통해 "북한과 미얀마 지도자들도 베트남의 사례를 따르면 평화와 기회의 새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좋지 않은 사이였더라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에 상응한 혜택을 주겠다는 의미다.

윤창희 기자

◆ PNTR='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의 약자. 미국이 다른 나라와 '정상 무역관계(NTR)'를 영구적으로 맺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교역에서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한다는 '최혜국 대우(MFN)'를 미국은 1997년부터 NTR이란 용어로 바꿔 썼다. 미 의회는 다른 나라의 NTR 지위를 매년 심사해 연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PNTR을 승인받은 국가는 이런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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