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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아침] '떡 찌는 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떡 찌는 시간' - 고두현(1963~ )

식구들

숫자만큼

모락모락

흰 쌀가루가 익는 동안

둥그런 시루 따라

밤새 술래잡기하다

시룻번 떼어 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이웃집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네

오래도록

이곳에.


시루 구멍을 얇게 썬 무로 막습니다. 팥고물 한 대접과 쌀가루 두 대접을 켜켜이 고릅니다. 쌀가루 켜는 반드시 홀수여야 합니다.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를 개어 만든 시룻번으로 솥과 시루의 틈새를 둘러가며 붙입니다. 구수하면서도 달디단 떡 찌는 냄새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내내 떡시루 근처를 희희낙락했습니다. 쌀가루는 흰 살(肉)이, 팥고물은 붉은 피가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해마다 생일 떡시루가 익고 있는 내내 전전긍긍입니다!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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