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전윤철 전 부총리 외환은행 매각 진실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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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전윤철 전 경제부총리와 이정재 전 금감위원장은 이제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말할 때가 됐다."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가 작심한 듯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에 대해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주도했다"며 개인 비리로 규정한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재경부에 20여 년간 몸담았다는 그는 지난 7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무명 공무원'이란 이름으로 일부 언론사에 이 같은 주장을 담은 e-메일을 보냈다.

그는 14쪽에 이르는 편지에서 먼저 "김진표 전 부총리 등으로부터 매각 당시의 판단 배경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을 듣고 싶다"고 운을 뗐다. 공무원 조직체계상 상관의 허락과 힘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므로 결정권자가 나서서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장관은 변씨로부터 매각 필요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것이고, 이를 허용했으니 추진도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번에 김진표.이정재씨 등에 대해 헐값 매각에 간여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는 당시 외환은행 매각이 불가피한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금융시장의 안정을 주된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비율) 등 구체적인 세부계약 조건을 실무 차원에서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당시 공적자금 사용이 끝난 뒤 새로운 금융 불안 조짐이 엄청난 현안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 외환은행을 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어떤 국내 금융사도 인수에 나서지 않았다"며 다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법 규정을 문리적으로만 해석해 답답하게 따지는 관료만 있었다면 외환위기는 어떻게 극복했겠느냐"고 되물었다.

특히 그는 검찰 수사가 국민의 '반(反) 투기자본'정서에 기댄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매각 뒤 론스타의 막대한 차익을 국민 정서가 용서치 못해 문제가 생겼고, 만약 외환은행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면 사회집단적으로 집요하게 문초하기는커녕 오히려 애국자로 불렀을 것"이란 주장이다.

변씨의 개인 비리에 대해서도 그는 "외환은행이 변씨의 보고펀드에 400억원을 투자한 게 대가성이라면 다른 금융회사의 투자도 모두 대가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리수사에 초점을 두는 검찰의 한계를 볼 때 매각과정에서의 절차 문제, 부분적 진술, 여론 등을 얽어매 형법규정을 들이대면 위법행위가 아닌 게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최고 정책책임자인 장관이 나서 당시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당시 매각 상황을 보고받지 못했다면 직무유기고, 묵인했다면 공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침묵에 대한 자괴감도 드러냈다. "우리는 현재 (변씨를 보며)'너무 잘나간다고 까불면 저렇게 된다'고 침묵하며 출세를 위해 고개 숙여 열심히 일한다"며 "공무원으로서 사후책임만을 의식하면 위험한 일이 있을 때 누가 나서느냐"고 개탄했다.

편지 내용이 알려지자 재경부도 술렁거리고 있다. 그동안 재경부 직원들은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게 행정부가 할 일"이라며 말을 아낀 상황이라 이 편지는 '항명'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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