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분야까지 KGB 손길/소,KGB 권한 확대조치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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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화 후퇴 우려 더 커져/경제 정보 모두 장악 현실정책에 직접 간여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군부등 강경파와 권력을 공유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권한과 현실문제에 대한 관여의 폭이 점점 커지고 있어 소련민주화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대통령령을 통해 KGB에 기업체·관공서 및 기타 조직단체 등을 불시에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새로 부여했다.
이같은 새로운 권한부여는 KGB가 군과 합동으로 1일부터 각 구성공화국의 수도에서 상시적으로 수색을 실시하겠다고 밝힌지 하루만에 나온 것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22일 소련 인민대의원대회 석상에서 크류츠코프 KGB 의장이 『국가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할지 모르며 KGB는 부패를 분쇄하기 위해 새로운 권한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 후 강화되어온 KGB의 권한이 경제분야에까지 확대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에 KGB가 확보한 권한은 ▲합작투자회사와 외국회사를 포함한 모든 기업에 문서와 기타정보를 요구하고 ▲재고와 현금 등을 필요에 따라 조사할 수 있으며 ▲은행 및 기타 신용기관에 금융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은행이외의 장소에 보관중인 현금·귀중품·서류 등을 요구하고 보관장소를 봉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거의 무제한적인 것이다.
따라서 KGB는 이제 소련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자체군대와 경제현상 일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손에 넣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소련 최고의 권부로 등장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난 23일 단행된 1단계 화폐개혁(50루블·1백루블짜리 고액화폐의 폐지 및 일시적인 예금인출 동결)에도 KGB의 평소 주장이 반영됐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어 KGB의 현실정책관여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KGB의 현실정치관여 그 자체보다는 KGB등 보수강경파가 갖고 있는 대 서방관에 고르바초프가 지배받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KGB가 전연방적 차원에서 분열되지 않고 강력한 물리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기 때문에 현실정치관여는 필연적이며 점점 확대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KGB의 대 서방관이 지나치게 공작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우려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서방의 대 소련 화폐전쟁 준비설이다.
KGB는 그동안 미 CIA(중앙정보국) 및 서방정보기관들이 소련을 파괴하기 위한 「화폐전쟁」을 준비중이라고 주장해왔다.
즉 실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루블화를 미 CIA등 서방의 정보기관이 암거래를 통해 대량으로 수집한 다음,이를 일시에 특정도시에 투입해 경제파탄을 일으킬 공작을 진행중이라는 지적이었다.
또한 이를 위해 외국정보기관은 보관과 반출이 쉬운 50루블·1백루블 등 고액권을 수집중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역시 고액화폐를 선호하는 지하경제종사자들과 외국정보기관의 공작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화폐개혁을 비롯한 일련의 제도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전문가들은 소련에서 발행한 화폐의 총량을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그중 30% 정도가 유통되지 않고 어딘가에 비축되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KGB는 이렇게 사라진 30% 정도가 외국기관이나 지하경제종사자의 수중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그들의 주장과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마구 찍어내다 보니 과잉유동성을 보이고 있는 통화를 흡수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크루츠코프가 지난해 12월22일 인민대의원 대회석상에서 서방정부와 기업들이 소련의 안보와 경제에 보이지않는 위협이 되고 있으며 KGB는 새로운 권한이 필요하고 소련은 외국의 제의에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정세판단에 입각한 확고한 신념에 의했던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강경책과 KGB에 대한 새로운 권한부여,개혁적 인사들의 사퇴 등은 고르바초프가 점차 개혁파세력에 등을 돌리고 군부와 KGB 및 공산당내 강경파의 영향력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를 현실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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