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레즈비언·게이 커플 '상부상조'해 아이 낳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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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남성 동성애자가 여성 동성애자에게 정자를 기증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확대 핵가족'이란 제목으로 남성 동성애자가 레즈비언 여성에게 정자를 제공, 육체관계 없이 아이를 낳는 세태에 대해 보도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6일엔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동성애자 딸 메리(37.사진)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태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이 남성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게이 남성이 레즈비언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정자를 주는 것은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 게이 남성은 일반인보다 쉽게 친권을 포기한다는 것.

동성애 커플들은 그동안 주로 아이를 입양해 키웠으나 요즘엔 이런 방식으로 직접 낳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가장 최근에 실시됐던 2000년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레즈비언 커플의 34%와 게이 커플의 22%가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게이들이 아이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90년에 비해 두 배 늘어나 '게이비 붐(Gayby boom)'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레즈비언 커플의 양육 비율도 같은 기간 50%가 증가했다.

이와 관련, 일반인들이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자를 기증한 게이 남성은 친권을 포기하지만, 생물학적인 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레즈비언 파트너는 어떻게든 친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를 낳은 동성애 파트너와 사별하든, 헤어지든 함께 기른 아이에 대해 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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