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투명화 계기 … 후유증도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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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검찰의 론스타 수사 결과가 발표된 7일 "현재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고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인 만큼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존중하지만 선뜻 수긍하긴 어렵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9개월에 걸친 론스타 수사가 남긴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경제 관료들 사이에선 "앞으로 시비가 붙을 사안엔 결재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자조가 팽배하다. 론스타와 국민은행 간의 외환은행 재매각은 무산됐다.

외국 투자자들은 앞으로 한국에 투자할 때 '법률적 리스크'를 정밀하게 따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사모펀드의 로비로 우량 은행을 헐값에 팔아치웠다는 '음모론'이 검찰수사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음모의 실체는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만 가져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 '변 국장, 4174만원에 외환은행 넘겼다?'=검찰은 "론스타 임원들의 로비 의혹은 전모가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스티븐 리 전 론스타 코리아 대표나 엘리스 쇼트 부회장 등 론스타 임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수사상 장애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사를 바라본 많은 금융계 인사와 관료들은 "그렇게 뒤졌는데도 밝혀내지 못했으면 애초에 음모론의 실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로비의 흔적이란 게 찾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변양호 국장 한 사람만을 불과 4174만원의 뇌물로 구워삶아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했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불법 로비의 목표 중 하나가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조작해 부실은행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자로 변 전 국장과 이 전 행장 둘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했던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인사들의 혐의는 사실상 밝혀내지 못했다.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는'불법 로비→BIS 비율 조작→헐값 매각'이라는 구도가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검찰이 재경부와 금감위 등의 주장을 배척한 후유증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앞으로 누가 책임질 일을 하겠나"고 묻는다. "말 많은 부하직원이 이의를 제기하면, 뒤탈이 무서워서라도 일을 덮게 될 것"이란 얘기다. 과천의 관료들 사이에선 "복지부동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 금융시스템 재점검 기회 될 듯=금융감독 시스템의 허술함이 드러난 것은 검찰 수사의 성과다. 대형 인수합병(M&A)의 절차와 과정이 투명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변 전 국장은 영장 실질심사에서 "우리나라 행정시스템을 뭘로 보느냐"며 강력 반발했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은 재경부.금감위.청와대 등이 모두 동의해야 이뤄질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결론에 따르면 전윤철.김진표 두 전직 부총리는 변 전 국장으로부터 구체적인 매각진행 경과를 보고받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대형 은행을 팔면서도 정작 금융정책의 책임자들은 구체적 내용을 몰랐다는 것이다. 애초 증자나 신규자본 유치를 추진했던 외환은행이 갑자기 '매각'으로 급선회하는 과정을 꿰뚫고 있는 이는 감독당국 안에 많지 않았다.

권오규 부총리는 이와 관련, "의사결정 과정은 그 절차와 규정이 투명하게 오픈돼야 한다"며 "앞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능력과 청렴, 의지 여부를 떠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여주는 체제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 외국인 투자에 미칠 영향은=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투자 리스크'를 높게 간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한 금융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에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한국 검찰의 법 적용에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는 외국인 투자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홍콩의 한 기업금융 전문가는 "단지 론스타가 너무 많은 이익을 거둔 것이 문제가 돼 발목이 잡힌 것으로 아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권 부총리는 "실정법에 따른 사법당국의 법적 절차로 이 문제를 봐야 하고, 실정법을 위반하면 당연히 법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시각은 이와 다른 상황이다.

이상렬.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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