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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많은 아파트 청약 제한/이춘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형주택 소유자에 대한 청약 1순위 자격배제와 공급물량의 20배수까지만 청약기회를 주겠다는 보도가 나간 24일 신문사와 건설부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큰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1순위 자격을 뺏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20배수로 청약자격으르 제한하겠다는 발상에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50평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지만 집값은 25평짜리 아파트 보다 싸다. 그런데도 아파트와 똑같은 면적으로 1순위 자격을 박탈한 것은 무슨 경우냐』는게 전화내용의 주류였다.
간혹 『장기예치자들에게 청약 우선권을 주는 맹점을 악용해 통장이 고가에 뒷거래가 이뤄질 우려도 없지 않다』는 「우국적 조언」도 있었다.
역시 주택에 관한한 국민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전문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격려·항의·조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론은 한군데로 모아진다. 경쟁자가 될수 밖에 없는 다른 사람의 자격을 박탈한 것은 잘한 일이고,내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그릇된 정책이라 할 것이다.
물론 「내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딱한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집 없는 서러움에서 벗어나고자 없는 살림을 쪼개 청약예금에 들어 이제 겨우 1순위 자격이 생겼는데 20배수 제한에 걸려 청약기회가 돌아올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라니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느냐는 하소연이 그것이다.
청약예금 가입후 9개월,작년 6월 이후 가입자라도 24개월 경과후면 자동적으로 생기던 1순위 자격을 하루아침에 「무자격 1순위」로 전락시킨 정부를 더이상 어떻게 믿겠냐는 얘기다.
정부 정책입안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작년말 공청회에서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여론이 모아져 보완후 시행키로 하고 보류됐던 이번 개정안 내용이 불과 한달여만에 전격 입법예고된 과정은 우리를 착잡케 만들고 있다.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공급정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지시 한마디에 상황이 일변했기 때문이다.
공복에게는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길이 진정으로 대통령을 보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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