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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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람들은 누구나 견고한 믿음의 성을 쌓아가며 살아가고자 한다. 6세난 아이에게 신라와 백제의 싸움에관한 이야기를 읽어준 일이 있었다. 그때 아이는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편이냐고 물었다. 둘 다 좋은 편이라고 말했더니 어떻게 좋은 사람들 끼고 싸울 수가 있느냐고 했다. 선인과 악인의 싸움이라는 전형적인 주제로 만들어진 만화영화를 많이 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의 믿음의 성은 늘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두개의 방으로 굳건히 나뉘어 있는 것이다. 아이에겐 사물에 대한 어떤 판단이든 이 두 방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 십 년 간 급격한 변화를 겪은 우리의 현실을 둘러보면 어디에서고 굳건한 믿음의 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을 건조할 확고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잡다한 기준들이 혼재한 상태여서 판단의 일관성이 없으니 어떻게 믿음들을 엮어 방을 만들고 성을 쌓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 윤리의 문제는 그중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인신매매나 성폭행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거나 피해를 부인해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듣게 된다. 이것은 강간이 폭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성적인 문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것이다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손목만 잡혔어도 자결하던 그런 사화는 이미 아니기만 여전히 순결은 여자에게는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가 되어있다.
우리는 누가 부당하게 얻어맞아 멍이들고 상치가 났다 해서 그 사담의 순결성을 의심하기는 않는다.
한 거인의 의지에 반하여 누가 그의 인격을 가장 원초적 차원에서부터 침해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남을 고문하거나 노예처럼 매매하는 것이 엄청난 폭력인 것과 같은 이치로 보여진다. 그러나 인격의 순결성은 그와 같은 폭력에 의해 때때로 상처받고 손상당하지만 스스로 내던지지 않는 한 빼앗기거나 남에게 소유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을 위한 작은 상담소가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해 조만간 문을 열게 되리라는 소식은 매우 반갑게 들린다. 우리가 성폭행 피해자로 하나의 폭력 피해자로 받아들이고 피해에 대한 심리상담이나 병원치료와 같은 적절한 배려를 하는 식으로 믿음의 성을 쌓는다면 피해자들이 정신이상이 되거나 자살, 또는 이혼의 길로 들어서는 또 다른 불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폭행에 관한 한 이제껏 우리가 머물렀던 믿음의 성을 다시금 새롭게 다듬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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