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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혼 달래며 흥 돋우니 한 풀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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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희망'의 가치를 값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소리꾼 장사익(57.사진)은 신곡 '희망 한 단'에서 희망의 가치를 너무나 인간적인, 그만의 방식으로 정의 내린다. 노래에서 "희망 한 단이 얼마예유"라는 그의 질문에 채소 파는 아줌마는 "희망유? 나도 몰러유. 채소나 한 단 사가세유, 선생님."하며 채소 한 단을 들이민다.
"희망이나 꿈이 저 하늘의 별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는 채소 한 단 파는 게 희망이요, 꿈이지유. 살다 보니까 희망, 꿈이란 것이 내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돼유."

이처럼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그의 노래를 기다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10일 열리는 그의 콘서트 '사람이 그리워서'는 한 달 전에 일찌감치 매진됐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인간적인 냄새와 정서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거 아니겠어유? 그런 정서를 같이 느끼고 호흡하는 무대가 많지 않다는 얘기도 되고…. 성원에 감사할 따름이지유."

그가 벌이는 노래판마다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것은 농익을 대로 농익은 흥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소리로 풀어내는 그만의 능력 때문이다. 초상집에서 '동백 아가씨'와 '봄날은 간다'를 불러 가는 이의 혼을 달래고, 듣는 이를 숙연케 하는 소리꾼이 바로 그다. 흥을 돋우든, 한(恨)을 풀어내든 그의 노래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삶의 의미와 사람의 정(情)을 늘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풀어낸다.

콘서트 타이틀 '사람이 그리워서'는 최근 발매된 5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시골장'의 가사. 콘서트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그의 새 앨범에서 사람 냄새를 맡아도 될 듯하다.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는 내용의 '시골장', 미당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여 현대적인 레퀴엠으로 만든 '황혼길', 즉흥적인 기타.베이스.트럼펫 연주가 인상적인 '무덤', 현대문명의 총아인 자동차를 통해 '빠른 게 만능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자동차' 등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새 눈을 지그시 감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빨리 가려고 자동차를 타지만 막히면 허사예유. 빨리 가려다 더 늦게 가게 되고, 자동차는 타는 게 아니라 끄는 게 돼 버리지유. 한마디로 오리무중인 세상 아니에유? 급한 게 자동차뿐인가. 휴대전화 문화도 얼마나 급한지… 문명의 이기가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유. 봄.여름.가을.겨울 등 계절은 그렇게 급하지 않은데, 우리만 오버페이스(over-pace)를 하는 거유."

사운드 면에서도 이번 앨범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피아노.트럼펫이 많이 들어가고, 콘트라베이스 사운드는 처음으로 그의 노래에 녹아들어 갔다. 사운드의 변화에 대한 설명 역시 장사익답다.

"살다 보면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게 인연인데, 악기도 그런 것 같아유. 사운드적인 시도를 풍부하게 해 보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좋은 친구(악기)를 만나 좋은 관계(음악)가 만들어지고 그런 거지유."

50대 후반의 나이에 바라보는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듯 이번 앨범에 풀어냈다는 그. 저물어가는 자신의 초로(初老)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개인적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은 50대 후반 내 인생의 기록이에유. 노래를 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노랫말을 담은, 희망을 주는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져유. 노래가 즐거움만 줘서는 안 되는 거지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봐유. 노인들이 자신의 인생과 세계관을 담은 노래를 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자극을 주잖아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유."

북한산 끝자락의 집 앞마당에 날아드는 산새들을 바라보는 게 요즘 소일거리라는 그. 연습실이 따로 없느냐는 질문에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답한다.

"앞에 인왕산이 바라보이고, 산새들 날아드는 앞마당만큼 좋은 연습장이 어디 있겠어유. 새소리 들으며 노래 흥얼거리는 게 연습이지유. 강남 아파트가 비싸다지만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에유. 자연과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우리 집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유."

글·사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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