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핫뉴스] '기러기 가족'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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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장병을 앓던 40대 '기러기 아빠' 尹모씨가 최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선 동정론과 함께 조기유학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3년 전 두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尹씨는 올 들어 부인마저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출국한 뒤 혼자 생활해 왔다.

'sunny'라는 네티즌은 "尹씨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나도 유학생 자녀를 뒀지만 자식 때문에 부부의 인생을 너무 희생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가 된 지 3년째라는 정모씨는 "정말 괴롭고, 고통스럽고, 외롭다"며 "유학을 보낸다고 자식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부인과 헤어져 살다 보니 이혼 서류까지 왔다갔다한다"고 토로했다.

기러기 가족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네티즌들은 우리 사회와 교육제도 등에 대한 실망과 불안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그네'는 "당리당략에 치우쳐 제 몫만 챙기는 정치꾼들을 보면 자식들을 더 나은 곳으로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탓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상파'는 "정부가 경제나 교육문제에 뒷짐을 지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나라에 대한 배신감이 사람들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공교육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나'는 "평준화로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한반에서 공부하니 뭐가 되겠느냐"며 "과외시킬 돈이 없으니 유학 보내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모씨도 "교육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이니 선진화된 교육을 원하는 욕구를 해외에서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YD'는 "세계적으로 교육의 방향은 창의력 위주로 개인의 특정한 재능을 키우는 쪽으로 가는데 우리는 똑같은 교과서로 영어.수학.국어.사회를 배운다"며 "다양한 교육 수요를 교육당국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생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5년 전 딸과 아내를 미국으로 보냈다는 'brighan'은 "아이의 요구에 비행기를 태워 보냈더니 장학금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며 "싹이 보이면 아파트라도 팔아 외국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尹씨의 죽음은 '가족'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근원적인 되물음으로 이어졌다. 사회를 이루는 기본틀인 가족이 해체되는 역기능을 낳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다.

'무심'은 "아버지를 돈 부쳐 주는 기계로 전락시킬 수 있다"며 "가족 구성원 간의 위화감이 생겨 서로를 멍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jsh'는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기러기 가족들이 깨지는 등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봤다"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얘기가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현장에서 느꼈다"고 밝혔다. 남편에게 등을 떠밀려 아이들과 미국에 왔다는 'jeong66'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영어공부를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되는 건 가족의 사랑 안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朴모씨는 "국내에서도 이혼 등에 따른 가족해체가 심하지 않으냐"며 "세계가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지금 본인의 희생을 무릅쓰며 자녀를 유학 보내겠다는 어려운 결정은 결국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네티즌은 나름대로 처방도 제시했다. 미국 공립학교에 근무한다는 'johnny'는 "방학기간에 현지 학교에서 실시하는 캠프만 잘 이용해도 영어를 충분히 배울 수 있고 기러기 가족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중앙일보에 e-칼럼을 연재하는 홍성태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사랑하는 자식을 꼭 조기유학 보내고 싶다면 혼자 보내라"며 "책으로 지식을 쌓는 건 나중이고, 독립심부터 키우는 게 공부"라고 지적했다.

김준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