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REAL ESTATE] 요즘 아파트 시장의 '보자' 4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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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요즘 서울.수도권 아파트 시장의 기상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11.15 부동산 대책과 비수기 영향으로 추석 이후 들불처럼 번졌던 추격 매수세가 한풀 꺾이면서 관망세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호가도 급등세를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가 의도했던 연말 절세 매물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집값 담합 행위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일부 지역에선 거래가를 낮춰 적는 '다운계약서' 작성도 성행하고 있다.

◆지켜보자… 무차별 상승세 주춤 … 매수·매도자 모두 숨고르기

11.15 대책이 나온 지 3주째를 맞은 아파트 매매시장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매도.매수자 모두 관망세로 돌아섰다.

10월 초부터 지역.평형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치솟던 서울.수도권 아파트값도 공급 확대와 대출 규제를 주요 내용으로 한 11.15 대책 발표 이후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공인 관계자는 "요즘엔 하루 1~2건의 매수 문의가 있으면 다행"이라며 "정부 대책과 비수기 영향으로 추석 이후 확산됐던 매수세는 잦아든 것 같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사장도 "매도.매수 희망자 모두 일단은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 강북권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집값이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대출 규제가 덜한 6억원 이하 아파트를 중심으로 호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성북구 정릉동 로얄공인 관계자는 "6억원 이하 중소형 아파트에 관심을 갖는 실수요자가 많으나 매도.매수 호가의 격차가 너무 커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텨보자…세금보다 집값이 더 뛸 수도 2주택자들 매물 일단 붙들기

1일 종합부동산세 납부가 시작된 데 이어 내년부터는 2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가 50%로 중과되지만 세금 부담 때문에 당장 집을 팔겠다는 절세 매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등 일부 단지에서 세금 회피성 매물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많지 않다. 당장 집을 팔 경우 양도세가 부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집값이 많이 올라 세금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종부세의 경우 앞으로 개정될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은근히 작용하고 있다.

양천구 목동 쉐르빌공인 관계자는 "세금 때문에 집을 팔겠다는 사람은 이미 예전에 다 팔았고, 지금은 오히려 양도세가 부담돼 처분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집값이 떨어진다는 신호가 오기 전까지 투매 현상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 E공인 관계자는 "이해찬 청와대 정무특보가 '거주 연수에 따른 양도세 감면'을 언급한 이후에 양도세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면서 '일단 버텨보자'는 심리가 더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짜고보자… 잡을테면 잡아봐… 인터넷 등 통해 더 교묘해진 담합

아파트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집값 담합은 여전하다. 특히 서울 강북권과 경기도 부천.고양 등 아파트값이 상대적으로 뒤늦게 오르기 시작한 지역에서 담합 행위가 기승을 부린다.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부녀회의 집값 담합 행위에 대한 정부 단속이 심해지면서 요즘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특정 모임이 주로 나서고 있다. 부천시 원미구 중동 A아파트의 경우 최근 집값 담합을 위한 전단지를 부녀회가 아닌 'A아파트 사랑회' 이름으로 내걸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사랑회는 부녀회와 달리 단지에 대한 '대표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에 해당 단지를 담합 아파트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를 이용한 집값 담합도 심각한 양상이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는 집값을 끌어올리기 위한 게시글이 늘고 있다.

이들 카페에는 "집값을 올려 내년엔 종부세 고지서 받아보자"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악덕 중개업자 몰아내자"는 등의 게시글이 넘쳐나고 있다.

◆낮춰보자…취득등록세, 양도세 줄이자 다운계약서 작성도

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거래가를 낮춰 신고하는 이른바 '다운계약'을 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 호재 등으로 최근 집값이 급등한 지역이면서 입주한 지 1년이 안 된 단지에서 다운계약을 하는 일이 잦다. 파주 교하지구에 있는 W공인 관계자는 "거래는 많지 않지만 어쩌다 이뤄지는 매매는 상당수 다운계약"이라고 털어놨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취득.등록세를, 파는 사람 입장에선 양도세를 줄일 수 있는데 누가 곧이곧대로 신고하겠느냐는 것이다. 일산동구 마두동 B공인 관계자는 "풍동지구에서 인기 있는 I단지와 D단지는 입주 1년이 안 돼 양도시 차익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매도자는 양도세를 덜 물고, 매수자는 거래세뿐 아니라 6억원 초과 때 적용받는 대출 규제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다운계약 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정보업체에서 제공하는 풍동지구 40평형대 아파트 시세가 실거래가보다 2억~3억원가량 낮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현지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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