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만 파병논의에 고려할 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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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페르시아만 사태가 결국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상군 파병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전쟁이 격화되면 어느 쪽으로든 선택을 내려야 할 필요가 커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런 전망을 놓고 지상군 파병은 한국이 처해 있는 특수상황으로 봐서 지원금보조나 의무단 파견과는 다른,신중히 검토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고 본다.
정부는 파병을 결정하기에 앞서 이들 요소들을 철저히 검토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도록 당부한다.
미국 정부가 국제정의를 바탕으로 한 상징적 수준의 지원을 요청해왔을 때 우리 정부는 인색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2억2천만달러의 군사비를 분담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는 사태의 진전에 따라 전투병력의 추가파견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한 바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당시나 지금이나 정부는 의료진 이외의 전투부대 파견은 고려치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이러한 기본방침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의료진 파견문제에 대한 국회의 토론과정을 거쳐 페르시아만 지원에 대한 정부의 이러한 기본방침이 거듭 분명해지고 그 한계와 규모가 명확하게 설정되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기대속에서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상징적 군사비지원 차원에서 시작된 방침이 의료진 파견으로 발전된 지금까지의 과정처럼 추가지원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정부당국자는 『현재 전투병 파견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으나 미국 또는 다국적군에서 강력히 요청해 왔을때 국익의 손실을 가져온다고 판단되면 파병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국익의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것은 백번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다. 어느 누구도 이 논리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추가지원 요청이 있을때 검토해야 할 국익이 단순하지 않다는데 있다.
우선 첫번째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우리의 특수한 안보상황이다. 미미한 변화에도 민감한 남북한 군사균형관계로 미루어 국내에 그만한 불안의 요소도 남지 않도록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우리의 아랍세계와의 관계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그 양상은 아랍세계대 이스라엘·서방세계의 구도로 발전할 것이 확실하다. 특히 지금은 많은 아랍국가들이 이라크제재쪽에 동조하고 있으나 이스라엘과의 대결로 확산될 경우 범아랍민족주의에 따라 돌아설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될 경우의 아랍세계와 적대관계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난다고 해도 아랍세계의 특성상 외부세계에 대한 전체아랍민족의 반감은 뿌리깊게 남아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서독을 비롯한 서방 대부분의 나라들도 나토동맹 차원에서 군사지원을 하고 있으나 지상 전투병력 파견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소련·중국·일본 등의 전투병력 파견을 꺼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다른 나라들의 대응을 본보기로 삼아 국력이나 국내 안보 또 중동외교면에서 훨씬 어려운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 페르시아만에 대한 정책은 더욱 신중하게 검토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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