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시위속 미­이라크 대좌/기로에 선 페만… 제네바와 중동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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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심각한 베이커… 아지즈는 “여유”/“이라크 헬기 망명” 발표 미국서 철회/서방인들 앞다퉈 이스라엘서 출국
전쟁이냐,평화냐를 판가름 짓는 중요한 고비가 될 미­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9일 오전 10시30분(한국시간 오후 6시30분) 스위스 레만호변의 국제회의 도시 제네바에서 막을 올린다.
회담이 열리는 인터콘티넨틀호텔 주변을 비롯,시내 요소마다 스위스 무장경찰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시내 곳곳에서는 평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퍼져 이번 회담에 거는 세계의 희망과 기대를 실감케하고 있다.
○아지즈,보도진과 악수
○…미국의 베이커 장관은 8일 오후 9시10분 제네바 쿠엥트랭 국제공항에 도착,일체의 공식행사나 도착성명 발표없이 회담장이자 숙소인 인터콘티넨틀호텔로 직행.
호텔 현관과 로비,2층 난간 등을 가득 메운 2백여명의 TV 카메라 및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3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호텔에 도착한 그는 『아직 전쟁을 피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보느냐』는 등 각국 보도진의 함성에 가까운 질문에 일체의 대꾸도 하지 않는등 심각한 표정.
이어 40분만인 오후 10시 정각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띠고 10여명의 수행원과 함께 호텔 현관을 통과,아지즈 장관은 베이커 장관과는 달리 대기하고 있던 보도진과 악수를 나누는 등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제네바 시내 곳곳에는 무장경찰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펴는 모습이었는데 『국가원수급에 준하는 경호를 수행하고 있다』고 제네바 경찰국의 제라르 모리 대변인은 소개.
또 이날 시내 곳곳에서 여성·종교·평화단체 등이 주관하는 평화요구 시위와 함께 기도회 등이 열려 이번 회담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를 반영.
○…이번 회담이 몇시간 정도나 계속될까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이는 회담의 성패여부에 달려있다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뜻밖에 서로의 대화가 잘 풀려 타결의 실마리가 보일 경우 예상외로 길어질 수도 있는 반면 이미 알려진대로 양측이 서로의 입장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물러서지 않을 경우 간단히 끝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베이커나 아지즈 장관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외교관들인 만큼 결렬이 되더라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전망.
○위성사진 보이며 압력
○…이날 회담에서 베이커 장관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전달할 부시 미 대통령의 친서와 함께 페만의 병력배치 상황을 찍은 위성사진을 아지즈 장관에게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첩보위성이 촬영한 이 사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페르시아만 지역에 배치된 미국등 연합국의 병력 및 군사무기 상황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이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공격위협이 결코 엄포나 과장이 아니라는걸 확인시켜 줄 계획이라는 것.
○“전쟁 얘기는 유럽이 더”
○…유엔이 정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페르시아만에 전운이 짙게 깔린 요즈음 바그다드시는 송년축제때 쓰인 전구들이 아직 시내 곳곳에 줄지어 걸려있는 등 새해맞이 분위기로 가득차 있으며 긴박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내 야시장은 여전히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으며 백화점에는 각종 상품들이 가득 진열돼 있어 비록 유엔의 대 이라크 금수이후 물가가 2∼3배 오르기는 했지만 물자부족등 즉각적인 실제적 타격은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간 중재를 자청하고 바그다드를 숱하게 드나들었던 서방측 유명인사들중 하나는 『전쟁에 관한 얘기는 바그다드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하고 있다』며 바그다드의 평온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이곳 외국인 거주자들은 이같은 느슨한 분위기는 대 이란전 당시 암울했던 상황과 너무나 대조적이라고 말할 정도다.
○…유엔이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의 철군시한으로 설정한 15일이 다가옴에 따라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사우디 주둔 다국적군의 화력 강화를 위한 탱크와 중무기 등의 해상수송 작전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사막방패」작전에서 병참을 맡고 있는 윌리엄 파고니스 소장은 선박을 이용한 이번 수송작전은 『일찍이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대규모』라고 밝혔다.
파고니스 소장은 이어 『베트남전 당시 이렇게 많은 병력을 수송하는데 5∼6년이 걸렸으며 한국전 당시에도 이같이 빠른 속도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 정부들은 자국민들에게 유엔이 제시한 이라크군 철수시한인 오는 15일 이전에 이 지역을 떠날 것을 종용하고 있으며 많은 항공사들이 이 지역에서 발착하거나 경유하는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하는가 하면 각국 대사관들은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또 전쟁 발발시 이라크가 공격목표로 선언한 이스라엘에서는 외교관을 비롯한 많은 서방인들이 출국 러시를 이루어 지난 6일과 7일 이틀동안에만 1만2천명이 텔아비브 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등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사실여부는 확인 못해”
○…이라크 헬기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는 미 국방부의 주장을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면 부인함에 따라 미 국방부는 8일 6대의 이라크 헬기가 점령 쿠웨이트로부터 망명 군인들을 싣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왔다는 발표를 철회했다.
피트 윌리엄스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미 국방부가 이 보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대변인은 『미국은 현 시점에서 이 보도가 사실인지,아닌지를 확인해 줄 수가 없다. 우리도 해명을 재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스투 와그너 해군 중령은 이날 오전 『모든 보고는 사우디 정부의 보고』라며 『우리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제네바=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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