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만 태산… 해결의지 없다(경제 먹구름 이것이 문제다: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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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력·기술·수송 곳곳서 “병목”
한국경제가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고들 얘기한다. 국제수지는 4년만에 적자로 돌아서고 내수확대로 지탱되기는 했지만 성장은 완연히 전만 못하며 경제전반에 걸친 불균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보다 큰 문제는 이러한 전환기적 진통에 대한 우려만 무성할 뿐 분명한 문제의식과 진지한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새로운 발전단계로 진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문제를 분명히 파악하는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 시리즈는 이 문제를 앞으로 7회에 걸쳐 짚어볼 계획이다.<편집자주>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해결되지 않은채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비효율적인 재정집행과 이에 따른 사회간접자본의 불비,서비스산업의 이상비대와 왜곡된 고용구조,지지부진한 기술개발과 생산성향상,불필요한 간섭과 규제가 상존하는 관료구조,소모적인 정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이런 모든 것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80년대 들어 강력하게 추진됐던 재정긴축은 단순히 예산규모를 줄이는데만 초점이 모아졌을 뿐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정작 중요한 문제에는 눈길이 닿지 않았다.
6공들어 재정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이 또한 경직성경비의 증가와 단순한 보상적 차원의 지출로 연결됐을 뿐이었다.
사회간접자본 형성을 위한 공공투자가 뒤켠으로 밀려남에 따라 도로·항만·공업용지 및 용수·보관·유통시설 등 곳곳에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고속도로를 비롯한 주요 간선도로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로는 국가의 혈맥과도 같아 여기에 경색증이 생기면 구석구석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같은 경색이 일기전에 충분한 사전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본말이 전도된 예산타령속에 국가경제의 전체적인 구도도 고려되지 않은 선거공약 속에서나,그나마도 일과성발표만으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항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접안시설과 하역시설,보관·하치시설이 태부족한데다 그나마의 시설조차 주요 기능간의 능력 불균형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과 인천 등 주요 국제항은 밀려드는 선박과 화물을 감당치 못해 항구에 배를 대지도 못한채 몇주일씩 바깥 바다에서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며,그러다 보니 외항선들이 국내에 입항을 꺼리는 현상마저 일고 있다.
이처럼 수송체계에 병목현상이 일면 생산현장에서 아무리 밤샘해 제때 물건을 만들어내도 허사가 된다.
수송차질로 인한 코스트상승은 또 별개의 문제다. 물건이 제때 공급 안되니 주문 또한 늘 턱이 없다.
이런 것들을 하드웨어쪽의 문제라 한다면 소프트웨어쪽에도 또다른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경제가 대외경쟁에서 버텨온 것은 값싸고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한 가격경쟁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인력은 생산현장에서 심각한 공급차질을 빚고 있으며 고용비용 또한 결코 싼 값이라 말할 수 없는 수준에 와있다. 물론 절대적인 임금수준은 선진 각국보다 낮지만 새로운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저임금의 상대적 이점은 거의 소진됐다.
더이상 싼맛에 우리 상품을 찾아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승부를 걸 곳은 보다 나은 품질,무엇인가 새로운 상품의 개발,최대한의 원가절감노력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의 이점이 사라져간 80년대를 통해 기술혁신·생산성향상은 거창했던 구호와는 달리 만족할만한 수준에는 전혀 이르지 못하고,그 결과 이제 우리 상품은 세계시장에서 위에선 품질에 눌리고 아래선 가격에 차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술도입과 모방의 눈썰미로 일단 선진국수준의 70∼80%선까지는왔다싶자 이제는 완강한 기술보호의 벽과 수입장벽에 가로막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릇된 사회풍조와 오도된 가치관은 산업현장에서 인력수급의 왜곡이란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한편에선 고학력 실업자가 사회문제화 되면서도 정작 필요한 분야엔 인력이 모자라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수없이 많은 행정절차 간소화,민간자율화가 나왔어도 기업에서 느끼는 불필요한 행정간섭은 여전하며 경제활동에 쏘여지는 정치권의 비경제적인 입김은 약화되지 않고 있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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