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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이제 시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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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5년 전에 특위를 구성해 안을 만들고, 법안이 제출된 지 2년 만에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제출되고 통과되기까지 쌓였던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효과가 있지만, 그동안 미뤘던 수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대선에서도 5년 전 대선 이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개정 법률은 기간제근로자(계약직 등) 약 350만 명, 단시간근로자(파트타이머 등) 약 114만 명, 파견근로자 약 13만 명을 적용 대상으로 한다. 이들의 고용을 한정적으로 허용하고, 고용상의 차별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해 오.남용을 방지하고 차별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보호입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을 반대하는 측은 대체업무나, 일시적인 업무 이외에는 비정규직의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입법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증가시키는 악법이라 비난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을 고용해야 하는 사용자 측은 경직적이고 실효성이 미흡한 과잉 규제로 유.무형의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거나 주기적으로 해고해 비정규직 계층에 오히려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 피해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개정 법률은 기간제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을 초과해 고용할 경우 함부로 해고를 못하게 한다. 그리고 파견근로자도 2년을 초과할 경우 사용자가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규정으로 기간제 근로자나 파견근로자가 줄어들면 성공이다. 그러나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고, 새로운 직원을 뽑는 식으로 일자리가 불안해지면 실패다. 현재 기간제근로자 중 약 70만여 명이 평균 2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중 얼마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다. 저임금 비정규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보호입법의 취지대로 인건비가 30~40% 증가하는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사용자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 법률에 거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정 법률은 기간제근로자와 파견근로자의 불합리한 처우상의 차별을 해소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노동위원회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조사.신문하고, 조정.중재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한 것이다. 차별 해소 시대의 문을 연 것이다.

이번 법률 개정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번 개정 법률은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에게만 적용된다. 그리고 보험설계사.학습지 교사.화물차 기사 등과 같은 특수형태 취업자 약 90만 명, 하도급 용역사원 약 50만 명은 이 법과 무관하다. 그뿐만 아니라 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취약근로자 약 300만 명의 문제는 그대로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희망은 없는 것인가. 양분법적 대립과 갈등을 불식하고, 힘을 모아 차별 해소 역량을 키우면 희망이 있다.

고령화 등으로 인구구조가 변하고, 정보기술이 발전하고, 글로벌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고용 형태의 다양화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불평등 계층으로 인식하고 억제하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차별을 줄이고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양분해 차별을 부각시키기보다 다양화로 수용하고 공존하면서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도 보람과 만족을 느끼면서 일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차별 해소 절차가 실효성을 갖도록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일인 만큼 관심과 역량이 여기에 집중됐으면 한다.

박준성 성신여대 교수·경영학